¸¸¹Î´º½º, ¸¸¹Î, ¸¸¹Î±³È¸, ¸¸¹Î´º½º, ÀÌÀç·Ï, Àç·Ï, ´ÚÅ͸®
2025ë…„ 9ì›” 6ì¼ í† ìš”ì¼ ì˜¤ì „ 11:0
 
 

예수님께서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ìŸìœ¼ì‹  섭리
Ãֽо÷µ¥ÀÌÆ®
"그중 한 êµ°ë³‘ì´ ì°½ìœ¼ë¡œ 옆구리를 찌르니 ê³§ 피와 ë¬¼ì´ ë‚˜ì˜¤ë”ë¼"
(ìš” 19:34)
ìš”í•œë³µìŒ 19장 34ì ˆ í›„ë°˜ì ˆì—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ê³§ 피와 ë¬¼ì´ ë‚˜ì˜¤ë”ë¼"ë§ì”€í•œ 대로 로마 êµ°ë³‘ì€ ì´ë¯¸ ìˆ¨ì´ ëŠì–´ì§„ ì˜ˆìˆ˜ë‹˜ì˜ ì˜†êµ¬ë¦¬ë¥¼ 창으로 찔렀습니다. ...
       
 
  
 

[ê¸°íš íŠ¹ì§‘ ì¼ê³±êµíšŒ] ë¼ì˜¤ë””게아 êµíšŒë¥¼ 향한 ì£¼ë‹˜ì˜ êµí›ˆ (2)


9813
2011ë…„ 10ì›” 30ì¼ ì¼ìš”ì¼


"ë‚´ê°€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ê¸ˆì„ ì‚¬ì„œ 부요하게 하고 í°ì˜·ì„ 사서 ìž…ì–´ ë²Œê±°ë²—ì€ ìˆ˜ì¹˜ë¥¼ ë³´ì´ì§€ 않게 하고 ì•ˆì•½ì„ ì‚¬ì„œ ëˆˆì— ë°œë¼ ë³´ê²Œ 하ë¼â€¦ 볼지어다 ë‚´ê°€ ë¬¸ë°–ì— ì„œì„œ ë‘드리노니 누구든지 ë‚´ ìŒì„±ì„ 듣고 ë¬¸ì„ ì—´ë©´ ë‚´ê°€ ê·¸ì—게로 들어가 그로 ë”불어 먹고 그는 나로 ë”불어 ë¨¹ìœ¼ë¦¬ë¼ ì´ê¸°ëŠ” ê·¸ì—게는 ë‚´ê°€ ë‚´ ë³´ì¢Œì— í•¨ê»˜ 앉게 하여 주기를 ë‚´ê°€ ì´ê¸°ê³  아버지 ë³´ì¢Œì— í•¨ê»˜ ì•‰ì€ ê²ƒê³¼ ê°™ì´ í•˜ë¦¬ë¼"(ìš”í•œê³„ì‹œë¡ 3:18~21)

오늘날 ë¼ì˜¤ë””게아 êµíšŒì™€ ê°™ì´ ë¯¸ì§€ê·¼í•œ ì‹ ì•™ì— ë¨¸ë¬´ëŠ” êµíšŒê°€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ì–´ë–¤ êµíšŒê°€ 열심히 기ë„하고 하나님 나ë¼ë¥¼ 위해 충성한다면 ë¶€í¥ê³¼ ë¬¼ì§ˆì˜ ì¶•ë³µë„ ì£¼ì‹œë©° 성ë„들ì—ê²Œë„ í•©ë‹¹í•œ ì¶•ë³µì„ ì£¼ì‹­ë‹ˆë‹¤. ê·¸ëŸ°ë° í•˜ë‚˜ë‹˜ê»˜ì„œ 주신 ì¶•ë³µì„ ìž˜ëª» 사용해 세ìƒê³¼ 타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ì‹ ì†ížˆ 회개하고 ì—´ì‹¬ì„ ë‚´ì–´ 다시금 í•˜ë‚˜ë‹˜ê³¼ì˜ ì‹ ë¢°ê´€ê³„ë¥¼ 회복해야 합니다.

당회장 ì´ìž¬ë¡ 목사

 

ì¼ê³±êµíšŒ 중 가장 í¬ê²Œ ì±…ë§í•˜ì‹  êµíšŒëŠ” ë¼ì˜¤ë””게아 êµíšŒë¡œ, ê·¸ë“¤ì€ ì—´ì‹¬ì„ ë‚´ì§€ 아니하므로 ê·¸ 행위가 ì°¨ì§€ë„ ì•Šê³  뜨ê²ì§€ë„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êµíšŒëŠ” 뜨거운 ì—´ì‹¬ì„ ê°€ì§€ê³  하나님 ëœ»ì„ ì¢‡ì•„ 행함으로 ì–´ë–¤ ìƒí™©ì—ì„œë„ í•˜ë‚˜ë‹˜ ë§ì”€ì„ ë까지 지키는 êµíšŒë¼ëŠ” ì‚¬ì‹¤ì„ ì•Œ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ë¶€ì¡±í•¨ì„ ëŠë¼ì§€ 못하고 ë„리어 부요하다 ìƒê°í•˜ëŠ” ë¼ì˜¤ë””게아 êµíšŒë¼ í• ì§€ë¼ë„ ì§„ì • 회개하고 ëŒì´í‚¤ê¸°ë¥¼ ì›í•˜ì…¨ìŠµë‹ˆë‹¤. 그래서 ê·¸ë“¤ì´ ì–¼ë§ˆë‚˜ ì˜ì ìœ¼ë¡œ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는지 ê¹¨ìš°ì³ ì£¼ë©° ê¶Œë©´ì˜ ë§ì”€ì„ 하십니다.

 

 

1. ë‚´ê°€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ê¸ˆì„ ì‚¬ì„œ 부요하게 하고

 

ê¸ˆì€ ì •ê¸ˆ ê°™ì€ ë¯¿ìŒì„ ì˜ë¯¸í•©ë‹ˆë‹¤. ì‚¬ëžŒë“¤ì´ ê¸ˆì„ ê·€í•˜ê²Œ 여기므로 ì‹ ì•™ìƒí™œì— 있어서 매우 귀중한 믿ìŒì„ ê¸ˆì— ë¹„ìœ í•©ë‹ˆë‹¤. ë”°ë¼ì„œ 'ê¸ˆì„ ì‚¬ì„œ 부요하게 하ë¼'는 ë§ì”€ì€ 금과 ê°™ì´ ë³€í•¨ì—†ëŠ” 믿ìŒì„ 소유하ë¼ëŠ” 뜻입니다. 믿ìŒì´ 있어야 구ì›ë°›ì•„ ì²œêµ­ì— ê°ˆ 수 있고 무엇ì´ë“ ì§€ 구하는 대로 ì‘ë‹µë°›ì„ ìˆ˜ 있기 때문입니다(마 9:29). 입술로만 '믿습니다' 고백하는 ê²ƒì´ ì•„ë‹ˆë¼ í–‰í•¨ì´ ë”°ë¥´ëŠ” 믿ìŒ, ìƒí™©ê³¼ ì¡°ê±´ì— ìƒê´€ì—†ëŠ” 믿ìŒì´ì–´ì•¼ 합니다. ì´ëŸ¬í•œ 믿ìŒì„ ì˜ì ì¸ 믿ìŒì´ë¼ê³  하며, ì´ì²˜ëŸ¼ 변함없는 믿ìŒì„ 성경ì—서는 금 ë˜ëŠ” ì •ê¸ˆì— ë¹„ìœ í•©ë‹ˆë‹¤. ì˜ì ì¸ 믿ìŒì„ 가진 ì‚¬ëžŒì€ í•œ 번 하나님께서 ë§ì”€í•˜ì‹œë©´ 어떠한 ìƒí™©ì—ì„œë„ ì ˆëŒ€ì ìœ¼ë¡œ 믿고 따릅니다. 엘리야 ì„ ì§€ìžê°€ 그러했습니다(ì™•ìƒ 18장). 엘리야는 ë¶ì´ìФë¼ì—˜ì˜ ì•„í•© 왕 때 활ë™í•œ ì„ ì§€ìžìž…니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ê·¸ì—게 3ë…„ ë°˜ ë™ì•ˆ 가뭄으로 고통받는 ì´ìФë¼ì—˜ì— 비를 내리겠다고 ë§ì”€í•˜ì…¨ìŠµë‹ˆë‹¤. 그는 ì´ ë§ì”€ì„ 온전히 믿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ë¼ê°‘니다. 그리고 ë•…ì— ê¿‡ì–´ 엎드려 ì–¼êµ´ì´ ë¬´ë¦Ž 사ì´ë¡œ 들어갈 ë§Œí¼ ê°„ì ˆí•œ 기ë„를 드려 마침내 í° ë¹„ì˜ ì‘ë‹µì„ ë°›ìŠµë‹ˆë‹¤. 엘리야가 사환ì—게 ì¼ê³± 번까지 올ë¼ê°€ êµ¬ë¦„ì´ ìžˆëŠ”ì§€ 확ì¸í•˜ë¼ í–ˆëŠ”ë° ì´ëŠ” ë까지 믿고 기ë„í•´ ì‘답받겠다는 ì˜ë¯¸ìž…니다. 만약 ì¼ê³± ë²ˆì§¸ì— ì‘ë‹µì´ ì—†ì—ˆë‹¤ í•´ë„ ì—˜ë¦¬ì•¼ ì„ ì§€ìžëŠ” ì‘ë‹µì´ ì˜¬ 때까지 계ì†í•´ì„œ 기ë„í–ˆì„ ê²ƒìž…ë‹ˆë‹¤. ì´ì²˜ëŸ¼ 한 번 ë¯¿ì€ í•˜ë‚˜ë‹˜ì„ ë까지 믿는 ê²ƒì´ ì°¸ 믿ìŒì´ê³ , 정금과 ê°™ì€ ì˜ì ì¸ 믿ìŒìž…니다. ì´ëŸ¬í•œ 믿ìŒì€ 그냥 ì–»ì„ ìˆ˜ 있는 ê²ƒì´ ì•„ë‹™ë‹ˆë‹¤. 세ìƒì—ì„œë„ ì •ê¸ˆì´ ë‚˜ì˜¤ê¸°ê¹Œì§€ëŠ” 불로 단련하는 ê³¼ì •ì´ ìžˆì–´ì•¼ í•˜ë“¯ì´ ë¯¿ìŒ ì—­ì‹œ ì—°ë‹¨ì˜ ê³¼ì •ì´ ìžˆì–´ì•¼ 합니다. ë§Žì€ ì‹œí—˜ê³¼ í™˜ë‚œì„ ê±°ì¹˜ë©´ì„œ 믿ìŒìœ¼ë¡œ 승리하고 죄와 피 í˜ë¦¬ê¸°ê¹Œì§€ 싸워 버리며 ë§ì”€ëŒ€ë¡œ 살기 위해 수고하고 ì¸ë‚´í•˜ë©° 절제할 때 정금 ê°™ì€ ë¯¿ìŒì„ 가질 수 있지요.

 

 

2. í°ì˜·ì„ 사서 ìž…ì–´ ë²Œê±°ë²—ì€ ìˆ˜ì¹˜ë¥¼ ë³´ì´ì§€ 않게 하고 ì•ˆì•½ì„ ì‚¬ì„œ ëˆˆì— ë°œë¼ ë³´ê²Œ 하ë¼

 

주님께서는 마ìŒì´ 부요해 ë²Œê±°ë²—ì€ ìˆ˜ì¹˜ë¥¼ 당하는 ë¼ì˜¤ë””게아 êµíšŒì— 'í°ì˜·ì„ 사서 입으ë¼' ë§ì”€í•˜ì…¨ìŠµë‹ˆë‹¤. 여기서 í°ì˜·ì€ 성ë„ë“¤ì˜ ê±°ë£©í•œ í–‰ì‹¤ì„ ì˜ë¯¸í•˜ë©°, ê·¸ê²ƒì€ ë°”ë¡œ 거룩한 마ìŒì—서 나옵니다. ë”°ë¼ì„œ 'í°ì˜·ì„ 입는다'는 ë§ì”€ì€ '마ìŒì— 있는 ë¹„ì§„ë¦¬ì˜ ê²€ì€ ë§ˆìŒì„ ë²—ê³  ì§„ë¦¬ì˜ í•˜ì–€ 마ìŒìœ¼ë¡œ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ì˜ì˜ ì˜·ì„ ìž…ì–´ ë²Œê±°ë²—ì€ ìˆ˜ì¹˜ë¥¼ ë©´í•  수 있습니다. 죄로 물든 ê²€ì€ ë§ˆìŒì„ ê°–ê³  ìžˆìœ¼ë©´ì„œë„ ìžì‹ ì˜ 죄와 ì–´ë‘ ì„ ë°œê²¬ì¹˜ 못하고 ì‚¬ëžŒì˜ ë³¸ë¶„ì„ ìžƒì€ ëª¨ìŠµì´ ë°”ë¡œ ì˜ì ìœ¼ë¡œ ë²Œê±°ë²—ì€ ê²ƒì´ë©° ë¶€ë„러운 ì¼ìž…니다. í•˜ë‚˜ë‹˜ì„ ë¯¿ëŠ”ë‹¤ í•˜ë©´ì„œë„ ìžì‹ ì˜ ë²Œê±°ë²—ì€ ê²ƒì¡°ì°¨ 깨닫지 못하는 ì‚¬ëžŒì€ ì˜ì ì¸ 소경ì´ë‚˜ 다름없습니다. ì´ë“¤ì„ 향해 주님께서는 'ì•ˆì•½ì„ ì‚¬ì„œ ëˆˆì— ë°œë¼ ë³´ê²Œ 하ë¼' 하여 ì˜ì ì¸ ëˆˆì´ ì—´ë ¤ì•¼ í•  ê²ƒì„ ë§ì”€í•˜ì‹­ë‹ˆë‹¤. 믿ìŒì„ 가지고 ë§ì”€ëŒ€ë¡œ 살아가면 차츰 ì„±ë ¹ì˜ ìŒì„±ì„ 듣고 진리가 무엇ì¸ì§€, 죄가 무엇ì¸ì§€ 깨달아 ì˜ì ì¸ ë¶„ë³„ë ¥ì´ ìƒê¹ë‹ˆë‹¤. ì´ëŸ¬í•œ ìƒíƒœë¥¼ ì˜ì•ˆì´ 열렸다고 합니다. ì´ì²˜ëŸ¼ ì˜ì•ˆì´ 열릴 때 하나님 ë§ì”€ì„ ë“¤ì–´ë„ ì´í•´ê°€ ë˜ê³  ì²œêµ­ì— ëŒ€í•œ 소ë§ì´ 주어지며 ë§ì”€ì— 비추어 ìžì‹ ì„ 발견해 진리로 ë³€í™”ë  ìˆ˜ 있습니다. ë”°ë¼ì„œ ì˜ì•ˆì´ 열린다는 ê²ƒì€ ì‹¤ì œ ì˜ì•ˆì´ ì—´ë ¤ ì˜ì˜ 세계를 본다는 ì˜ë¯¸ë„ 있지만, ë” ì¤‘ìš”í•œ ì˜ë¯¸ë¡œ 하나님 ë§ì”€ì„ 들ìŒìœ¼ë¡œì¨ ê·¸ ëœ»ì„ ê¹¨ë‹«ê³  ìžì‹ ì„ 진리로 변화시켜 가는 ê²ƒì„ ëœ»í•©ë‹ˆë‹¤. ì˜ì•ˆì´ ì—´ë ¤ í•˜ë‚˜ë‹˜ì„ ì•Œê³  ê·¸ë¶„ì˜ ëœ»ì„ ê¹¨ë‹«ëŠ” 사람ì´ë¼ë©´ 세ìƒê³¼ ì§í•˜ì§€ 않으며, 어찌하든 ë§ì”€ì— 비추어 ìžì‹ ì˜ ì–´ë‘ ì„ ë°œê²¬í•´ 진리로 변화ë˜ê³ ìž 노력합니다. ì´ëŸ° ì‚¬ëžŒì´ ë¹› ê°€ìš´ë° ì‚¬ëŠ” 사람으로서 하나님 ì‚¬ëž‘ì„ ë°›ê²Œ ë©ë‹ˆë‹¤.

 

 

3. 무릇 ë‚´ê°€ 사랑하는 ìžë¥¼ ì±…ë§í•˜ì—¬ 징계하노니 네가 ì—´ì‹¬ì„ ë‚´ë¼ íšŒê°œí•˜ë¼

 

주님께서는 ë¼ì˜¤ë””게아 êµíšŒì— 다시 한 번 ê·¸ë¦‡ëœ ì‹ ì•™ì—서 ëŒì´í‚¬ ê²ƒì„ ì´‰êµ¬í•˜ì…¨ìŠµë‹ˆë‹¤. ê³§ "무릇 ë‚´ê°€ 사랑하는 ìžë¥¼ ì±…ë§í•˜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ì—´ì‹¬ì„ ë‚´ë¼ íšŒê°œí•˜ë¼" 하시는ë°, ì´ëŠ” 징계하시는 ì´ìœ ì™€ 목ì ì´ 잘 나타나 있습니다. ìžë…€ë¥¼ 사랑하는 부모는 ì•„ì´ê°€ ê·¸ë¦‡ëœ ê¸¸ë¡œ ê°ˆ ë•Œì— ë§¤ë¥¼ 들어서ë¼ë„ 바로 잡습니다. 고통스러울 ê²ƒì„ ì—¼ë ¤í•´ 매를 들지 못한다면 ì§„ì • 사랑한다 í•  수 없습니다. 엘리 ì œì‚¬ìž¥ì€ ë‘ ì•„ë“¤ì´ ì„±ì „ì„ ë”럽히는ë°ë„ ë§ë¡œë§Œ 타ì´ë¥¼ ë¿ ì§•ê³„í•˜ì§€ 않았습니다. ì•„ë“¤ë“¤ì˜ ë‚˜ìœ í–‰ì‹¤ì€ ê³„ì†ëê³  ê²°êµ­ 하나님 진노로 ê·¸ë“¤ì€ ì „ìŸí„°ì—서 전사했습니다. ì´ ì†Œì‹ì„ ë“¤ì€ ì—˜ë¦¬ 제사장 역시 ì˜ìžì—서 넘어져 죽고 ë§ì•˜ì§€ìš”. 하나님께서 ê·¸ì˜ ìžë…€ë“¤ì„ 징계하시는 ê²ƒì€ ì‚¬ëž‘í•˜ì‹œê¸° 때문입니다(히 12:6~8). 죄를 지었는ë°ë„ 아무런 ì±…ë§ì´ë‚˜ 징계가 없다면 ê²°êµ­ 'ì£„ì˜ ì‚¯ì€ ì‚¬ë§'(롬 6:23)ì´ë¼ëŠ” ì˜ê³„ì˜ ë²•ì¹™ì— ë”°ë¼ ì‚¬ë§ìœ¼ë¡œ ê°ˆ ìˆ˜ë°–ì— ì—†ìŠµë‹ˆë‹¤. ì´ëŸ¬í•œ í•˜ë‚˜ë‹˜ì˜ ì‚¬ëž‘ì„ ë§ˆìŒìœ¼ë¡œ ëŠê»´ì•¼ 하며, 징계를 통해서ë¼ë„ ì‚¬ëž‘ì„ ëŠë¼ëŠ” ì‚¬ëžŒì€ íšŒê°œí•˜ê³  ë³€í™”ë  ìˆ˜ 있습니다. ë°˜ë©´ì— í•œ 번, ë‘ ë²ˆ 징계를 ë°›ì•„ë„ ì•„ë¬´ëŸ° 깨달ìŒì´ 없다면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ì´ìœ ê°€ 없으므로 다ìŒì—는 ìž˜ëª»ì„ í•´ë„ ì§•ê³„ì¡°ì°¨ 오지 않습니다. ë§ì”€ëŒ€ë¡œ ì‚´ì§€ 못하고 죄를 지어 가는ë°ë„ 형통한 것처럼 ë³´ì´ë©° ì§•ê³„ë„ ì—†ë‹¤ë©´ ì´ëŠ” 하나님으로부터 ì™¸ë©´ì„ ë‹¹í•œ ìƒíƒœì´ë¯€ë¡œ ì´ë³´ë‹¤ ë”한 ë¶ˆí–‰ì€ ì—†ìŠµë‹ˆë‹¤.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ìžë…€ê°€ ìž˜ëª»ëœ ê¸¸ë¡œ ê°ˆ ë•Œì— ì‚¬ìƒìžì™€ ê°™ì´ ë²„ë ¤ë‘ì§€ 않으시고 ì‚¬ëž‘ì˜ ë§¤ë¥¼ 드십니다. 징계가 당장ì—는 무섭고 아플 수 있지만 ì´ëŠ” ëŒì´í‚¤ê²Œ 하시려는 í•˜ë‚˜ë‹˜ì˜ ì‚¬ëž‘ìž„ì„ ê¹¨ë‹¬ì•„ì•¼ 합니다. 그렇다 해서 ê¼­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ê²ƒì€ ì•„ë‹™ë‹ˆë‹¤.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시기 ì „ì— ë§ì”€ìœ¼ë¡œ ê¹¨ìš°ì³ ì£¼ëŠ” 등 여러 방법으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ì´ë•Œ ì‹ ì†í•˜ê²Œ 깨닫고 ëŒì´í‚¤ë©´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 징계가 임한다 í•´ë„ ê·¸ 역시 하나님 ì‚¬ëž‘ìž„ì„ ê¹¨ë‹¬ì•„ 중심ì—서 회개하고 ëŒì´ì¼œì•¼ 합니다. 그리하여 í•˜ë‚˜ë‹˜ê³¼ì˜ ì‹ ë¢°ê´€ê³„ë¥¼ 회복하고 하늘나ë¼ì—ë„ ë‹¤ì‹œê¸ˆ ìƒê¸‰ì„ 쌓아가야 합니다.

 

 

4. ë‚´ê°€ ë¬¸ë°–ì— ì„œì„œ ë‘드리노니 누구든지 ë‚´ ìŒì„±ì„ 듣고 ë¬¸ì„ ì—´ë©´

 

주님께서는 ë¼ì˜¤ë””게아 êµíšŒê°€ 미지근한 ì‹ ì•™ìƒí™œë¡œ ê¹Šì€ ì˜ì  ìž ì— ë¹ ì¡Œì§€ë§Œ, ì´ì œë¼ë„ 주님 ìŒì„±ì„ 듣고 깨어날 ê²ƒì„ ë‹¹ë¶€í•˜ì…¨ìŠµë‹ˆë‹¤. 먼저 주님께서 ë¬¸ë°–ì— ì„œì„œ ë‘드린다는 ê²ƒì€ ì§„ë¦¬ ë§ì”€ìœ¼ë¡œ 우리 ìƒê°ì„ ë‘드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ë§ì”€ì„ ë“¤ì„ ë•Œ 마ìŒì— ë‹´ì•„ ì–‘ì‹ ì‚¼ì•„ì•¼ 하는ë°, 그러려면 먼저 진리 ë§ì”€ì´ ìƒê°ì˜ 문으로 들어와야 하며 다ìŒìœ¼ë¡œ 마ìŒì˜ ë¬¸ì— ë“¤ì–´ì™€ì•¼ 합니다. ë§ì”€ì´ 마ìŒì— 담기면 차츰 ë§ì”€ëŒ€ë¡œ 지켜 행할 수 ìžˆëŠ”ë° ì´ê²ƒì„ 가리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신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ì¼ë‹¨ ìƒê°ì˜ 문으로 ë§ì”€ì„ 받았다 í•´ë„ ì •ìž‘ 중요한 마ìŒì˜ ë¬¸ì„ ì—´ì§€ 않으면 ë§ì”€ì´ ë¨¸ë¦¬ì— ì§€ì‹ìœ¼ë¡œë§Œ 남습니다. ì´ê²ƒì´ 바로 ì§€ì‹ì ì¸ ë¯¿ìŒ ê³§ í–‰í•¨ì´ ë”°ë¥´ì§€ 않는 ì£½ì€ ë¯¿ìŒì´ë©°, ì´ëŸ° 믿ìŒìœ¼ë¡œëŠ” ê²°êµ­ 미지근한 ì‹ ì•™ì— ë¨¸ë¬´ë¦…ë‹ˆë‹¤. 오랜 세월 ì‹ ì•™ìƒí™œì„ 해서 ë§ì”€ì— 대한 ì§€ì‹ì€ 많다 í•´ë„ ë§‰ìƒ í–‰í•¨ìœ¼ë¡œì¨ ë§ˆìŒì— ì¼êµ¬ì§€ 못했으니 ì˜ì ì¸ 믿ìŒë„ 오지 않고 êµíšŒë§Œ 왔다갔다 하는 ëª¨ìŠµì´ ë˜ê³  맙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ëŠ¥ë ¥ì´ ìžˆë‹¤ í•´ë„ ì‚¬ëžŒì˜ ë§ˆìŒ ë¬¸ì„ ê°•ì œë¡œ ì—´ì§€ 않으십니다. ê·¸ê²ƒì€ í•˜ë‚˜ë‹˜ ê³µì˜ì— ë§žì§€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ì‚¬ëžŒì˜ ë§ˆìŒ ë¬¸ì„ ê°•ì œë¡œ ì—´ì–´ ì˜ì ì¸ 믿ìŒì„ 갖게 한다면 ì´ ì„¸ìƒì— 구ì›ë°›ì§€ 못할 ì‚¬ëžŒì´ ì—†ì„ ê²ƒìž…ë‹ˆë‹¤. ì´ê²ƒì€ ê³µì˜ ê°€ìš´ë° ì´ë£¨ì–´ì§€ëŠ” ì¸ê°„ ê²½ìž‘ì´ ì•„ë‹™ë‹ˆë‹¤. ë•Œë¬¸ì— í•˜ë‚˜ë‹˜ê»˜ì„œëŠ” 사람ì—게 ìžìœ  ì˜ì§€ë¥¼ 주셨습니다. 스스로 우러나는 마ìŒìœ¼ë¡œ í•˜ë‚˜ë‹˜ì„ ë¯¿ê³  사랑하는 ì°¸ ìžë…€ë¥¼ 얻기 ì›í•˜ì‹  것입니다. ë”°ë¼ì„œ 주님께서 ìš°ë¦¬ì˜ ìƒê°ì˜ 문과 마ìŒì˜ ë¬¸ì„ ìžê¾¸ ë‘드리시지만 ê·¸ ë¬¸ì„ ì—¬ëŠ” ê²ƒì€ ìš°ë¦¬ ìžì‹ ìž…니다. í•˜ë‚˜ë‹˜ì„ ì‚¬ëž‘í•˜ëŠ” 사람ì´ë¼ë©´ ìƒê°ì˜ ë¬¸ì€ ë¬¼ë¡ , 마ìŒì˜ 문까지 í™œì§ ì—´ì–´ 주님과 함께 먹고 ë§ˆì‹¬ìœ¼ë¡œì¨ ì§„ë¦¬ì¸ í•˜ë‚˜ë‹˜ ë§ì”€ëŒ€ë¡œ 살아가는 ê²ƒì„ ë³¼ 수 있습니다.

 

 

5. ì´ê¸°ëŠ” ê·¸ì—게는 ë‚´ê°€ ì´ê¸°ê³  아버지 ë³´ì¢Œì— í•¨ê»˜ ì•‰ì€ ê²ƒê³¼ ê°™ì´ í•˜ë¦¬ë¼

 

ë§ˆìŒ ë¬¸ì„ ì—´ê³  ì§„ë¦¬ì˜ ë§ì”€ì„ 받아서 지켜 행함으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ì‚¬ëžŒì€ ì´ ì„¸ìƒê³¼ ì›ìˆ˜ 마귀 ì‚¬ë‹¨ì„ ì´ê¸¸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ì´ê¸°ëŠ” ê·¸ì—게는 ë‚´ê°€ ë‚´ ë³´ì¢Œì— í•¨ê»˜ 앉게 하여 주기를 ë‚´ê°€ ì´ê¸°ê³  아버지 ë³´ì¢Œì— í•¨ê»˜ ì•‰ì€ ê²ƒê³¼ ê°™ì´ í•˜ë¦¬ë¼"(계 3:21) ë§ì”€í•˜ì‹­ë‹ˆë‹¤. ì‚¬ë§ ê¶Œì„¸ë¥¼ ì´ê¸°ê³  í•˜ë‚˜ë‹˜ì˜ ë³´ì¢Œ ìš°íŽ¸ì— ì•‰ìœ¼ì‹  주님처럼, ë까지 ì´ê¸°ëŠ” 사람 역시 구ì›ë°›ì€ ìžë¦¬ì— ì´ë¥´ê²Œ 하시겠다는 ë§ì”€ìž…니다. 미지근한 신앙으로 ì¸í•´ 토하여 내치리ë¼ëŠ” 엄중한 ì±…ë§ì„ ë°›ì€ ë¼ì˜¤ë””게아 êµíšŒì´ì§€ë§Œ 지금ì´ë¼ë„ ë§ˆìŒ ë¬¸ì„ ì—´ê³  회개한다면 구ì›ì˜ ê¸¸ì´ ì—´ë ¤ 있ìŒì„ ë§ì”€í•˜ì‹  것입니다. 구ì›ì˜ ë¬¸ì´ ì™„ì „ížˆ 닫히기 전까지는 ì•„ì§ ê¸°íšŒê°€ 있기 ë•Œë¬¸ì— ì£¼ë‹˜ê»˜ì„œëŠ” 마지막 순간까지 안타까운 마ìŒìœ¼ë¡œ ë§ì”€í•˜ì‹­ë‹ˆë‹¤. 우리는 ë까지 ì´ê¸°ëŠ” ì‚¬ëžŒì´ ë˜ì–´ì•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ì¢ì€ ê¸¸ì„ ë³€í•¨ì—†ì´ ê°ì‚¬ì™€ 기ì¨ê³¼ 사랑으로 ê°ˆ ë•Œë§Œì´ ê·¸ë¶„ì´ ë‹¤ì‹œ 오실 ë•Œì— ì˜ê´‘ì„ í•¨ê»˜ 누릴 수 있습니다. ì–´ë–¤ ì‚¬ëžŒì€ ì´ê¸°ëŠ” 것 ê°™ë‹¤ê°€ë„ ì¤‘ë„ì— í¬ê¸°í•´ 축복과 ì˜ê´‘ì˜ ìžë¦¬ì— ë™ì°¸í•˜ì§€ ëª»í•˜ëŠ”ë° ê²°ì½” 그래서는 안 ë©ë‹ˆë‹¤. ë¼ì˜¤ë””게아 êµíšŒì— 주신 ë§ì”€ì„ 통해 ìžì‹ ì˜ ì‹ ì•™ì„ ì ê²€í•´ ë´„ìœ¼ë¡œì¨ í˜¹ì—¬ë¼ë„ 미지근한 ì‹ ì•™ì— ì –ì–´ 있었다면 지금ì´ë¼ë„ 회개하고 ëŒì´ì¼œì•¼ 하겠습니다. ë˜í•œ ë까지 ì´ê¸°ëŠ” ìžì˜ ëŒ€ì—´ì— ë™ì°¸í•´ ë”ìš± íž˜ì¨ ì²œêµ­ì„ ì¹¨ë…¸í•¨ìœ¼ë¡œ 주님 보좌 가까ì´ì— 함께하시기를 ë°”ëžë‹ˆë‹¤. 마지막 때 ì‹ ì•™ì´ ìž ë“  êµíšŒë¥¼ 깨우시고 ì‹ ë¶€ 단장하게 하시려는 하나님 ì‚¬ëž‘ì„ ê¹¨ë‹¬ì•„ 주님께 칭찬받는 êµíšŒì™€ 성ë„로 거듭나며, 믿ìŒìœ¼ë¡œ 승리하시기를 ì£¼ë‹˜ì˜ ì´ë¦„으로 ì¶•ì›í•©ë‹ˆë‹¤.





 
 

 

 

 
°¡Àå ¸¹ÀÌ º» ±â»ç
   

 
Ãßõ °Ë»ö¾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