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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ë…„ 12ì›” 13ì¼ í† ìš”ì¼ ì˜¤ì „ 11:2
 
 

ê°€ìƒì¹ ì–¸(4) 엘리 엘리 ë¼ë§ˆ 사박다니
Ãֽо÷µ¥ÀÌÆ®
"제육시가 ë˜ë§¤ 온 ë•…ì— ì–´ë‘ì›€ì´ ìž„í•˜ì—¬ 제구시까지 계ì†í•˜ë”니
ì œêµ¬ì‹œì— ì˜ˆìˆ˜ê»˜ì„œ í¬ê²Œ 소리 ì§€ë¥´ì‹œë˜ ì—˜ë¦¬ 엘리 ë¼ë§ˆ 사박다니 하시니
ì´ë¥¼ 번역하면 ë‚˜ì˜ í•˜ë‚˜ë‹˜, ë‚˜ì˜ í•˜ë‚˜ë‹˜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ì´ê¹Œ 하는 뜻ì´ë¼"
(막 15:33, 34) ...
       
 
  
 

신실하신 하나님과'변개하는 마ìŒ'


10338
2016ë…„ 1ì›” 31ì¼ ì¼ìš”ì¼


하나님께서는 ë³€í•¨ë„ ì—†ìœ¼ì‹œê³  회전하는 그림ìžë„ 없으신 신실하신 ë¶„ì´ë‹¤(약 1:17 ; ì‹  7:9 ; 민 23:19). ë°˜ë©´ì— ë§Žì€ ì‚¬ëžŒì´ í•œ 번 정한 ì¼ì´ë‚˜ ì²˜ìŒ ê°€ì§„ 마ìŒì„ 쉽게 변개한다. ì´ëŠ” ìžì‹ ì˜ 유ìµì— ë”°ë¼ ì´ëž¬ë‹¤ 저랬다 하는 간사한 마ìŒì´ 있기 때문ì´ë‹¤.

변개하는 마ìŒì€ 믿ìŒì˜ 역사를 ì²´í—˜í•˜ê¸°ë„ ì–´ë µê³ , 하나님께 ì€í˜œë¥¼ ë°›ì•˜ë‹¤ê°€ë„ ìŸì•„버림으로 ì˜ì  ì„±ìž¥ì´ ë”딜 ìˆ˜ë°–ì— ì—†ë‹¤. ë”ìš±ì´ ì‹ ì•™ ìžì²´ê°€ ë³€ê°œë  ë•ŒëŠ” ìžì¹« 구ì›ì¡°ì°¨ 받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ìž ì–¸ 4장 23ì ˆì—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ë”ìš± 네 마ìŒì„ ì§€í‚¤ë¼ ìƒëª…ì˜ ê·¼ì›ì´ ì´ì—서 남ì´ë‹ˆë¼" êµí›ˆí•˜ê³  있다.


1. í•˜ë‚˜ë‹˜ì˜ ì—­ì‚¬ë¥¼ ë³´ê³ ë„ ìˆ˜ì°¨ë¡€ 약ì†ì„ 번복한 바로 왕

ì• êµ½ 왕 바로는 변개하는 마ìŒìœ¼ë¡œ ì¸í•´ ì—´ ìž¬ì•™ì„ ë§Œë‚¬ê³ , ëë‚´ ìžì‹ ê³¼ ì• êµ½ 군대가 í•œêº¼ë²ˆì— í™í•´ì— 수장ë˜ëŠ”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마ìŒì´ ê°•í…하여 놀ë¼ìš´ í•˜ë‚˜ë‹˜ì˜ ì—­ì‚¬ë¥¼ ë³´ê³ ë„ í•˜ë‚˜ë‹˜ì„ ê²½ì™¸í•  줄 몰ëžì„ ë¿ ì•„ë‹ˆë¼ ìˆ˜ì°¨ë¡€ 하나님 ëœ»ì„ ì „í•œ ëª¨ì„¸ì™€ì˜ ì•½ì†ì„ 번복하였기 때문ì´ë‹¤.

오늘날ì—ë„ í•˜ë‚˜ë‹˜ì˜ í¬ì‹  ê¶ŒëŠ¥ì˜ ì—­ì‚¬ë¥¼ ë³¼ 때는 í•˜ë‚˜ë‹˜ì˜ ì‚´ì•„ ê³„ì‹¬ì„ ë¯¿ëŠ”ë‹¤ê³  ë§í•˜ì§€ë§Œ í–‰í•¨ì€ ê·¸ë ‡ì§€ ì•Šì€ ì‚¬ëžŒë“¤ì„ ë³¼ 수 있다. ì •ë…• 중심ì—서 í•˜ë‚˜ë‹˜ì„ ê²½ì™¸í•œë‹¤ë©´ ê·¸ì— í•©ë‹¹í•œ 행함으로 ì•…ì„ ë²„ë¦¬ê³  ì„ ì„ í–‰í•´ì•¼ 한다(ìž  8:13). 그리할 ë•Œì— ì–´ë–¤ ì‹œí—˜ì´ ì™€ë„ ë³€ê°œí•˜ì§€ 않는 온전한 믿ìŒì„ 가질 수 있다.


2. ì™•ì˜ ê¶Œì„¸ê°€ 주어지니 겸ì†í•¨ì´ 사ë¼ì§€ê³  êµë§Œí•´ì§„ 사울 왕

ì‚¬ìš¸ì€ ì™•ì´ ë˜ê¸° ì „ì— ì‚¬ë¬´ì—˜ ì„ ì§€ìž ì•žì—서 스스로를 지극히 낮추었고, 왕으로 추대ë˜ì—ˆì„ 당시만 í•´ë„ ìˆ˜ì¤ì–´ ëª¸ì„ ìˆ¨ê¸¸ ì •ë„로 겸ì†í•œ 사람ì´ì—ˆë‹¤. 그러나 ì™•ì´ ëœ í›„ì—는 êµë§Œí•´ì ¸ ëë‚´ ì•…ì‹ ì—게 시달렸고, ê²°êµ­ 비참한 죽ìŒì„ 당하고 만다(ìž  15:10, 16:18).

ì´ì²˜ëŸ¼ ì§ë¶„ì´ ì£¼ì–´ì§€ë©´ 순종하고 ì„¬ê¸°ë˜ ì˜ˆì „ ëª¨ìŠµì€ ì‚¬ë¼ì§€ê³  ìžê¸° ìƒê°ì— ë§žì§€ 않으면 불순종하고, 지시하며 명령하는 ì‚¬ëžŒë“¤ì„ ë³¼ 수 있다. ì´ì „ì—는 '나 ê°™ì€ ì‚¬ëžŒì—ê²Œë„ ìƒê¸‰ ìŒ“ì„ ê¸°íšŒë¥¼ 주시다니.' 하며 ì¦ê²¨ 순종했는ë°, ì´ì œëŠ” '왜 나만 시키나?' 하며 불í‰ë¶ˆë§Œ 한다면 스스로 ì ê²€í•˜ì—¬ 겸ì†ìœ¼ë¡œ 허리를 ë™ì—¬ë§¤ì•¼ 한다.


3. í•˜ë‚˜ë‹˜ì„ ì˜ì§€í–ˆë˜ 마ìŒì´ 변개하여 ì‚¬ëžŒì„ ì˜ì§€í•œ 아사 왕

아사 ì™•ì€ í•œë•Œ í•˜ë‚˜ë‹˜ì„ ì‚¬ëž‘í•˜ì—¬ ìš°ìƒ ìˆ­ë°°ë¥¼ ê·¼ì ˆí•¨ì€ ë¬¼ë¡ , ìš°ìƒì„ 숭배한 어머니ì—게 íƒœí›„ì˜ ìœ„ë¥¼ íí•´ 버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나중ì—는 í•˜ë‚˜ë‹˜ì„ ì˜ì§€í•˜ë˜ 모습ì—서 ì‚¬ëžŒì„ ì˜ì§€í•˜ëŠ” 모습으로 변하여 ê²°êµ­ ë°œì— ì¤‘í•œ ë³‘ì´ ë“¤ì–´ 2ë…„ ë§Œì— ì£½ê²Œ ëœë‹¤(대하 14~16장). 하나님께서는 아사 왕ì—게 2ë…„ì´ë‚˜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ëë‚´ ëŒì´í‚¤ì§€ 않으니 ë” ì´ìƒ 지켜 주실 수 ì—†ì—ˆë˜ ê²ƒì´ë‹¤(습 1:6).

ì´ì²˜ëŸ¼ '주를 위해 ì‚´ê² ë…¸ë¼.'ê³  í–ˆë˜ ë§ˆìŒì´ 변개하여 다시 세ìƒê³¼ 타협하는 ì‚¶ì„ ì‚´ì•„ê°„ë‹¤ë©´ 다시 ì§ˆë³‘ì´ í‹ˆíƒ€ê³  문제가 ìƒê¸¸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기 때문ì´ë‹¤. 설령 현실ì ìœ¼ë¡œ 불가능해 ë³´ì¸ë‹¤ í•´ë„ ì°½ì¡°ì£¼ í•˜ë‚˜ë‹˜ì„ ë¯¿ê³  ë³€ê°œí•¨ì´ ì—†ì´ ë까지 ì˜ì§€í•œë‹¤ë©´ í•˜ë‚˜ë‹˜ê»˜ì„œë„ ê·¸ 믿ìŒì„ 보시고 반드시 ì‘답해 주신다.


4. 충성한다 했지만 ìžì‹ ì˜ ê°ì •ê³¼ ëœ»ì„ ì¢‡ìŒìœ¼ë¡œ ê²°êµ­ 반역한 요압 장군

ìš”ì••ì€ êµ°ëŒ€ 장관으로서 ë‹¤ìœ—ì´ ì™•ì´ ë˜ê³  ê·¸ 나ë¼ë¥¼ 든든히 세우는 과정ì—서 ë§Žì€ ê³µì„ ì„¸ìš´ 사람ì´ë‹¤. 그러나 ë‹¤ìœ—ì˜ ëœ»ì„ í—¤ì•„ë ¤ 섬기기보다는 사사로운 ê°ì •ê³¼ ìžê¸° ì˜ë¥¼ 앞세워 ìžì‹ ë³´ë‹¤ ì˜ë¡­ê³  선한 ì‚¬ëžŒë“¤ì˜ í”¼ë¥¼ 까닭 ì—†ì´ í˜ë ¤ 죽게 하는 등 ë‹¤ìœ—ì„ ì–´ë µê²Œ 만들었다(삼하 3:27~39). ê²°êµ­ ìš”ì••ì€ ë°˜ì—­ì„ ì¼ìœ¼ì¼œ ì£½ìž„ì„ ë‹¹í•˜ê³  만다.

ì´ì²˜ëŸ¼ 하나님 나ë¼ë¥¼ 위해 헌신했ì„ì§€ë¼ë„ 믿ìŒì—서 떠난다면 í•˜ëŠ˜ì˜ ìƒê¸‰ì´ 사ë¼ì§ˆ ë¿ ì•„ë‹ˆë¼ êµ¬ì›ë°›ê¸°ë„ 어렵다. 혹여 ì˜ë¬´ê°ì´ë‚˜ ìŠµê´€ì„ ì¢‡ì•„ 대충 ì‚¬ëª…ì„ ê°ë‹¹í•˜ê±°ë‚˜ 힘들어한다면 ì´ ë˜í•œ 마ìŒì´ 변개했다는 ì¦ê±°ì´ë‹¤. ë” ì‹¬í•´ì§€ë©´ 사명까지 놓고 ì‹¶ì€ ë§ˆìŒì´ 들 수 있으므로 ì†Œë§ ê°€ìš´ë° ì§ë¶„받기를 사모할 ë¿ ì•„ë‹ˆë¼ ë§¡ì€ ì‚¬ëª…ì— ì¶©ì„±í•¨ìœ¼ë¡œ 주님 오실 때까지 ë³€í•¨ì´ ì—†ì–´ì•¼ 한다(ê³ ì „ 15:58 ; 계 3:11).


5. ìž¬ë¬¼ì— ëˆˆì´ ì–´ë‘워 서ì›í•œ ê²ƒì„ ë³€ê°œí•˜ì—¬ ì €ì£¼ë°›ì€ ì•„ë‚˜ë‹ˆì•„ì™€ 삽비ë¼

사ë„행전 5ìž¥ì„ ë³´ë©´ 초대 êµíšŒì˜ 아나니아와 ì‚½ë¹„ë¼ ë¶€ë¶€ê°€ ìžê¸°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릴 ê²ƒì„ ì„œì›í–ˆì§€ë§Œ, ë¬¼ì§ˆì— ëŒ€í•œ íƒì‹¬ìœ¼ë¡œ ì¸í•´ ì¼ë¶€ë§Œ 드리다가 ì‚¬ë„ ë² ë“œë¡œì˜ ì±…ë§ê³¼ 함께 í˜¼ì´ ë– ë‚˜ 죽는 ì‚¬ê±´ì´ ë‚˜ì˜¨ë‹¤.

그러므로 하나님 ì•žì— ì„œì›í•œ ê²ƒì€ ë°˜ë“œì‹œ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서ì›í•˜ê±°ë“  갚기를 ë”ë”” 하지 ë§ë¼ 하시고, 해로울지ë¼ë„ 변치 아니할 ê²ƒì„ ë§ì”€í•˜ì…¨ë‹¤. ë˜í•œ ë” ì¢‹ì€ ê²ƒìœ¼ë¡œ 바꿔 드리는 것조차 í—ˆë½ì§€ 않으셨다(ì‹  23:21~23 ; 시 15:4 ; ë ˆ 27:10 ; ì „ 5:6). ì´ì²˜ëŸ¼ 변개하는 ê²ƒì„ ì‹«ì–´í•˜ì‹œëŠ” í•˜ë‚˜ë‹˜ì˜ ëœ»ì„ ë°ížˆ 알아 하나님과 약ì†í•œ ê²ƒì´ ìžˆë‹¤ë©´ ì‹ ì†ížˆ ì´í–‰í•˜ì—¬ 예비하신 ì¶•ë³µì„ ëˆ„ë¦¬ê¸° 바란다.


6. ìžì‹ ì˜ ìƒê°ê³¼ ë§žì§€ 않고 유ìµì´ 안 ë˜ë‹ˆ 변개하여 멸ë§ìœ¼ë¡œ ê°„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ë” ì´ìƒ ìžì‹ ì˜ ìƒê°ê³¼ ë§žì§€ 않고 ìžì‹ ì—게 유ìµì´ ë  ê²ƒ 같지 ì•Šìž ì˜ˆìˆ˜ë‹˜ì„ ëŒ€ì œì‚¬ìž¥ë“¤ì—게 팔아넘겼다. 아무리 예수님 가까ì´ì—서 모든 ê²ƒì„ ë³´ê³  들었다 í• ì§€ë¼ë„ 마ìŒì˜ 할례를 하지 않았기 때문ì´ë‹¤. ê²°êµ­ 그는 스스로 ëª©ìˆ¨ì„ ëŠê³  비참한 죽ìŒì„ 맞는다(í–‰ 1:18).

그러나 ì„±ë ¹ë°›ì€ í•˜ë‚˜ë‹˜ì˜ ìžë…€ëŠ” 쉬지 않고 기ë„하며 마ìŒì˜ 할례를 ì´ë£¨ë©´ì„œ 하나님과 êµí†µì„ ì´ë£¨ë©´ ì„±ë ¹ì˜ ê°ë™í•¨ ê°€ìš´ë° ëª¨ë“  ë§ì”€ì´ 믿어진다. ì‚¬ëž‘ì˜ í•˜ë‚˜ë‹˜ê»˜ì„œëŠ” ì–´ë–¤ 마ìŒì„ 품고 행하ëŠëƒë¥¼ ê°ì°°í•˜ì‹œëŠ” ë¶„ì´ë‹¤. ë”°ë¼ì„œ 우리가 얼마나 ì„±ë ¹ì˜ ê°ë™í•¨ìœ¼ë¡œ 하나님께 마ìŒì˜ í–¥ì„ ì˜¬ë ¤ 드리ëŠëƒì— ë”°ë¼ ê·¸ ì‘답과 ì¶•ë³µì´ ë‹¬ë¼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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