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장 이재록 목사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5~17)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고 오묘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모르면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두셔서 사람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고의로 선악과를 두시고 사람이 범죄케 하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첫 사람 아담에게 주신 축복과 경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은 어른의 모습으로 지음받았지만 지식적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풍요로운 에덴동산으로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하나님께서는 영의 세계와 진리, 선, 빛 등의 많은 영의 지식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식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로써 생령 아담은 만물의 영장답게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만한 자격을 갖추게 되지요.
그리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의 말씀대로(창 1:28) 아담은 많은 자녀를 낳으며 번성하였고,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단 한 가지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경고하셨지요. 그런데 무수한 세월이 지나자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불순종하게 됩니다.
2.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아담과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과정
창세기 3장 1절 이하를 보면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과정이 자세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뱀을 소름끼치도록 징그럽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류가 간교한 뱀으로 인해 사망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의 뱀은 오늘날과 달리 사랑스럽고 보기에 좋았을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지혜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뱀이 여자에게 물었지요.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러자 여자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했던 것입니다. 죽을 수도 있고 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변질시켜 버린 것이지요. 뱀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와가 간교한 뱀의 미혹을 받아들이니 예전과 달리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동하여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탐스럽게 보였지요. 결국 아내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 결과,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죄의 값을 치르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 당장 호흡이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정녕 죽으리라" 하신 것은 육의 죽음뿐 아니라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될 것을 의미하므로 아담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영적 교통이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또한 범죄한 아담의 모든 후손까지도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고 이 땅의 만물도 다 같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창 3:17).
뱀은 더욱 큰 저주를 받아 창세기 3장 14절에 "…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지요. 여기서 뱀은 영적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하며, 흙이란 '흙으로 지음받은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니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이 죄 가운데 사는 육의 사람들을 밥으로 삼아 시험, 환난, 재앙을 준다는 의미이지요. 그래서 육으로 타락한 사람들은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 온갖 고통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3.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
그러면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을 아셨음에도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생령으로 창조된 첫 사람 아담은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불행을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나 아름답고 평안하며 부족함이 전혀 없는 곳에 살았어도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없었지요. 사람이 어떤 것의 참된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것을 체험하여 상대성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태어나서 전혀 아파 본 적이 없다면 병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큰지 모르며 건강에 대한 감사도 없을 것입니다. 굶주림으로 고생해 본 사람이라야 풍성한 음식에 감사할 수 있고, 악이 있어야 선이 얼마나 좋으며, 어두움이 있어야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죽음을 본 일이 없었기에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요.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배고픔과 추위와 더위, 죽음, 이별, 죄악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경험한 후에는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사람이 참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편히 살아도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비록 잠깐 고생할지라도 참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시고 상대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자유의지 가운데 범죄함으로 인류는 추위와 더위, 질병과 가난, 배고픔, 이별, 죽음 등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이 땅에서 상대성을 알고 경작 과정을 겪은 후 장차 천국에 가면, 천국의 삶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고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며 세세토록 기쁨과 즐거움 속에 살아가게 되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악과를 두시고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인간 구원의 길도 예비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말씀한 것처럼 이 땅에서 잠시 슬픔과 고난을 당한다 해도 이후에는 지극히 영화로운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통해 인간 구원의 길을 깨닫고 믿음으로 참된 구원의 기쁨과 행복,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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