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일서 4:16)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 만민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뜻대로 아무 죄 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일까요?
첫째, 오래 참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이유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된 자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오래 참고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 년과 또 천 년, 다시 천 년 … 이렇게 6천 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아는 참된 아들, 딸이 나오리라.'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며 참으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오래 참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열매를 낼 때까지 모든 여파를 이겨내며 대가를 치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큰 아픔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사랑스럽게 지으신 이 땅을 심판해야 할 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홍수의 빗줄기만큼이나 하나님의 가슴에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셔야 했고, 결국 그들이 멸망하는 것도 보셔야 했지요. 독생자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피조물인 인생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처형되는 것도 보셔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신성을 가지신 분이라 해서 이런 일들을 쉽게 감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같은 인성도 가지셨기에 아픔과 슬픔, 기쁨과 감동을 느끼십니다. 더구나 선 자체이시기에 이런 감정들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지시지요. 소중하게 창조한 세상이 죄로 물들고 인생들이 악을 발하는 것을 보실 때마다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으셨을까요?
그런데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기다리십니다. 처음에 계획하신 경작의 역사를 마칠 때까지 반드시 참 자녀들이 나오리라는 믿음으로 이제까지 기나긴 세월을 참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받고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거나 교회에 나오면서도 여전히 죄를 버리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몇 번 기회를 주시다가 포기하셨다면 아마 구원받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너무도 오랜 세월을 참아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를 버리지 않고 변화시켜 주시는 사랑입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를 통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너무나 많은 권능을 보았습니다.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며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려 온 것도 보았지요.
이런 체험들을 무수히 했음에도 이들의 마음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는 기뻐하고 찬양했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이내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며 불순종에 불순종을 거듭했습니다. 마침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고 이들을 버리고자 하셨지요.
하지만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자신의 생명을 걸고 담대히 용서를 받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하든 살리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알았던 것이지요. 모세 입장에서 본다면 오랜 노예 생활 속에서 심히 강퍅해진 백성들을 인도하는 일보다 차라리 새로운 백성을 이루어 처음부터 율법을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순종을 잘했을 터이니 훨씬 쉬웠을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사랑으로 자녀를 낳아 애지중지 키웠는데 선천적인 장애가 있어 완전히 고칠 방법도 없고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 수도 있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차피 완치도 안 되는데 이런 아이를 키우느라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다시 건강한 자녀를 낳아서 잘 키우면 되지." 하고 아픈 아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그럴 수 없습니다. 나을 가능성이 티끌만큼이라도 있다면 가산을 탕진한다 해도 끝까지 아들을 고쳐주려 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하십니다. 어찌하든 버리지 않고 살려서 변화시키고자 하시지요. 의와 틀이 강하고 불순종을 많이 낳아 주변에서 볼 때 답답하고 변화가 더딘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시고 변화될 수 있도록 끝까지 은혜를 주십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까닭에 우리가 구원은 물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바라며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영광의 열매를 얻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죄 사함도 받아야 하지만 더 나아가 주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되어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원하셨습니다.
물론 지옥의 불길에서 벗어나 구원받은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는 것은 죽음 직전에 구원받은 한편 강도가 들어간 낙원(눅 23:43)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리운 새 예루살렘 성에서(계 21:10~11)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주님의 마음을 닮은 하나님의 참 자녀로 변화시켜 주님과 함께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열매를 얻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장차 그들에게 주어질 천국의 영광은 참으로 다양합니다(고전 15:41). 믿음의 분량에 따라(롬 12:3) 천국의 처소와 영광의 열매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오래 참으시며 어찌하든 버리지 않고 변화시켜 주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달아 죄악을 버리고 신속히 주님의 마음을 닮은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와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