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 요한일서 4:9~10 -
성경 66권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고 깊은지를 나타내 줍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죄인 된 인류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지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만세 전에 독생자를 예비하시고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
첫 사람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대로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하다가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죄인 된 사람들을 지옥에서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지요.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처참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시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그곳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살도록 배려하시며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생령 아담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간교한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니 대신 원수 마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아담의 후손들도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 온갖 눈물, 슬픔, 고통, 질병, 사망을 맛보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만세 전부터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통한 십자가의 섭리입니다. 곧 만세 전에 예수님을 예비하셨다가 때가 이르러 세상에 보내시고 온 인류의 죗값을 담당할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도록 구원의 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요 3:16).
2.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가난을 대속하신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의 확증으로 이 땅에 보내 주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존귀와 위엄을 갖추고 오신 것이 아니라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러면 구세주로서 오신 예수님께서 이처럼 낮고 천한 모습으로 태어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전 12:13). 그러나 날이 갈수록 불법이 성해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서로 속이고 미워하며 온갖 악을 행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짐승의 우리인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사람들의 참된 양식이 되시기 위해(요 6:51)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 즉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사람의 본분을 찾게 해 주시기 위함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가난한 길을 가셨습니다. 때로 주무실 곳이 없어 몸을 들에 누이시며 잡수실 것이 없어 주리기도 하셨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등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심에도 가난하고 헐벗은 길을 가신 것은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3.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각색 질병을 치료하는 등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그 대상은 주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이나 세리와 창기와 같이 죄인이라 정죄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지요(잠 3:34 ; 마 19:14). 또한 각색 질병을 치료해 주셨는데, 아무런 희망 없이 베데스다 못가에서 살아가던 38년 된 병자를 치료해 주셨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해 주셨으며, 심지어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 주기도 하셨습니다(눅 7:11~15). 뿐만 아니라 억눌린 자들을 돌아보시고 세리와 죄인들같이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벗이 되어 주셨지요. 그리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 하시며 인생들을 향한 한없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알려 주셨지요. 양 떼를 돌보는 목자의 심정으로 영혼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결국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자녀를 혹 저버리는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지요(사 49:15). 이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목숨까지 내어 주신 사랑, 곧 죽음을 초월한 무한대의 사랑을 베풀어 주신 사실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4. 사망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최고의 사랑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 중 최고의 사랑은 죄인을 살려 주시는 사랑이요, 사망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여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루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와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땅에다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십니다. 저희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다 돌아가고 여인만 남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시지요. 죄로 인한 수치감과 죽음의 공포 앞에 떨고 있던 여인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나 위로가 되고 감동이 되었을까요? 간음한 여인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 우리는 죄악 가운데 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때로는 부족하여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켜 진리 가운데 살아가기를 길이 참고 기다리시지요. 그리고 이러한 사랑을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역시 그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나갈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거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깨달아 가는 만큼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빛 가운데 행함으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