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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ë…„ 6ì›” 6ì¼ ê¸ˆìš”ì¼ ì˜¤ì „ 11:5
 
 

ì„±íƒ„ì ˆì˜ ì°¸ëœ ì˜ë¯¸ë¥¼ 정확히 아십니까?
Ãֽо÷µ¥ÀÌÆ®
"지극히 ë†’ì€ ê³³ì—서는 하나님께 ì˜ê´‘ì´ìš” ë•…ì—서는 기ë»í•˜ì‹¬ì„ ìž…ì€ ì‚¬ëžŒë“¤ ì¤‘ì— í‰í™”로다 하니ë¼"
(ëˆ„ê°€ë³µìŒ 2:14) ...
       
 
  
 

'ì‹­ìžê°€ì˜ ë„' 시리즈 12 - ì‹­ìžê°€ì˜ 처형(1)


3714
2021ë…„ 6ì›” 20ì¼ ì¼ìš”ì¼


"êµ°ë³‘ë“¤ì´ ì˜ˆìˆ˜ë¥¼ ì‹­ìžê°€ì— 못 ë°•ê³  ê·¸ì˜ ì˜·ì„ ì·¨í•˜ì—¬ 네 ê¹ƒì— ë‚˜ëˆ  ê°ê° 한 깃씩 얻고
ì†ì˜·ë„ 취하니 ì´ ì†ì˜·ì€ 호지 아니하고 위ì—서부터 통으로 ì§  것ì´ë¼â€¦ ë‚´ ì˜·ì„ ë‚˜ëˆ„ê³  ë‚´ ì˜·ì„ ì œë¹„ë½‘ë‚˜ì´ë‹¤ 한 ê²ƒì„ ì‘하게 하려 함ì´ëŸ¬ë¼â€¦"(ìš” 19:23~24)


예수님께서는 ë¨¸ë¦¬ì— ê°€ì‹œê´€ì„ ì“°ì‹œê³  ì˜¨ëª¸ì— ì‹¬í•œ 채ì°ì§ˆì„ 당해 피투성ì´ê°€ ë˜ì‹  채 사형집행 ìž¥ì†Œì¸ ê³¨ê³ ë‹¤ ì–¸ë•ì— ë„착하셨습니다. ì´ë•Œ 로마 ë³‘ì‚¬ë“¤ì€ ì˜ˆìˆ˜ë‹˜ì„ ì‹­ìžê°€ì— 못 ë°•ì€ ë’¤ ê²‰ì˜·ì„ ë„¤ 깃으로 나누어 가졌으며 ì†ì˜·ì€ 나누지 않고 제비뽑았지요.
ì´ì²˜ëŸ¼ ë²Œê±°ë²—ì€ ìˆ˜ì¹˜ë¥¼ 당하신 ì˜ˆìˆ˜ë‹˜ì˜ ì˜·ì— ë‹´ê¸´ 섭리와 예수님께서 ì†ê³¼ ë°œì— ëª» 박히신 ì´ìœ ì—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벌거벗긴 채 ì‹­ìžê°€ì— 달리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í•˜ë‚˜ë‹˜ì˜ ë…ìƒìžì´ì‹œë©°, ë§Œì™•ì˜ ì™•ì´ìž ë§Œì£¼ì˜ ì£¼ì´ì‹­ë‹ˆë‹¤. 그런ë°ë„ ìˆ˜ë§Žì€ ë°±ì„±ì´ ì§€ì¼œë³´ëŠ” 앞ì—서 겉옷과 ì†ì˜·ì´ ëª¨ë‘ ë²—ê¸´ 채 ì‹­ìžê°€ì— 달려 참으로 ê°ë‹¹í•˜ê¸° 힘든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ì´ì²˜ëŸ¼ 수치를 당하신 ê¹Œë‹­ì€ ë°”ë¡œ 우리가 받아야 하는 수치와 ë¶€ë„ëŸ¬ì›€ì„ ëŒ€ì‹  ê°ë‹¹í•˜ì‹œê¸° 위함입니다.
ë§Œì¼ ëª¸ì— ë”러운 ì˜¤ë¬¼ì´ ë¬»ì–´ 심한 악취가 난다면 즉시 씻어낼 것입니다. ì´ëŸ¬í•œ 오물보다 ë” ì¶”í•˜ê³  ë¶€ë„러운 ê²ƒì´ ì£„ì¸ë°, ë§Žì€ ì‚¬ëžŒì´ ì£„ ê°€ìš´ë° ì‚´ë‹¤ë³´ë‹ˆ ì£„ì— ëŒ€í•´ 무ê°ê°í•´ì¡Œì§€ìš”. 그러나 ë¹›ì´ ë¹„ì·¨ë©´ ë”러운 ê²ƒì´ ë“œëŸ¬ë‚˜ë“¯ì´ ë¹›ì´ì‹  í•˜ë‚˜ë‹˜ì˜ ë§ì”€ì— 우리 마ìŒì„ 비춰 ë³´ë©´ ìžê¸° ì•ˆì— ìžˆëŠ” ë¶€ë„러운 ì£„ë“¤ì´ ë°ížˆ 드러납니다. 죄악 ê°€ìš´ë° ì‚´ë˜ ì‚¬ëžŒë“¤ì€ ìž¥ì°¨ í•˜ë‚˜ë‹˜ì˜ ì‹¬íŒëŒ€ ì•žì— ì„¤ 때 ìžì‹ ì˜ ë”러운 마ìŒê³¼ í–‰ì‹¤ì´ ë‚±ë‚±ì´ ë“œëŸ¬ë‚˜ë¯€ë¡œ ê°ížˆ 고개를 들 수가 없게 ë˜ì§€ìš”.
그러나 예수님께서 ìš°ë¦¬ì˜ ì£„ë¥¼ 대ì†í•˜ì…¨ê³  우리가 받아야 í•  수치와 ëŠ¥ìš•ì„ ëŒ€ì‹  ê°ë‹¹í•˜ì…¨ìœ¼ë¯€ë¡œ ì´ë¥¼ 믿는 우리는 죄ì¸ì´ 당할 ë¶€ë„러움ì—서 벗어나게 ëœ ê²ƒìž…ë‹ˆë‹¤. ë”°ë¼ì„œ ë§ˆìŒ ì¤‘ì‹¬ì—서 ì£¼ë‹˜ì˜ ì‚¬ëž‘ì— ê°ì‚¬í•˜ë©° ì‹ ì†ížˆ 온전한 ì„±ê²°ì„ ì´ë£¸ìœ¼ë¡œ 한 ì  ë¶€ë„러움 ì—†ì´ ì£¼ë‹˜ì„ ë§žì´í•  수 있는 ìžê²©ì„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 ê²‰ì˜·ì„ ë„¤ 깃으로 나누게 하신 섭리

로마 ë³‘ì‚¬ë“¤ì€ ì˜ˆìˆ˜ë‹˜ì„ ì‹­ìžê°€ì— 못 ë°•ì€ ë’¤ ê²‰ì˜·ì„ ë„¤ 깃으로 나누어 가졌으며 ì†ì˜·ì€ 나누지 않고 제비뽑았습니다(ìš” 19:23~24). ì´ëŠ” 시편 22편 18ì ˆì— "ë‚´ ê²‰ì˜·ì„ ë‚˜ëˆ„ë©° ì†ì˜·ì„ 제비뽑나ì´ë‹¤"ë¼ê³  ì˜ˆì–¸ëœ ë§ì”€ì„ ì‘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로마 ë³‘ì‚¬ë“¤ì´ ì˜ˆìˆ˜ë‹˜ì˜ ì˜·ì„ ì·¨í•˜ë„ë¡ í—ˆë½í•˜ì‹  것입니다.
ì´ì²˜ëŸ¼ ì„±ê²½ì´ ì˜ˆìˆ˜ë‹˜ì˜ ì˜·ì— ëŒ€í•´ 구체ì ìœ¼ë¡œ ìžì„¸ížˆ 기ë¡í•˜ê³  있는 ê²ƒì€ ê·¸ê²ƒì´ ì´ìФë¼ì—˜ì˜ 역사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ì˜ˆìˆ˜ë‹˜ì˜ ê²‰ì˜·ì€ ë¬´ì—‡ì„ ì˜ë¯¸í•˜ê³ , 왜 네 깃으로 나누어 한 깃씩 가졌으며, ì´ ë§ì”€ì„ 미리 기ë¡í•´ 놓으셨ì„까요?
예수님께서는 유대ì¸ì˜ 왕ì´ë¯€ë¡œ 여기서 'ì˜ˆìˆ˜ë‹˜ì˜ ê²‰ì˜·'ì€ 'ì´ìФë¼ì—˜' ë˜ëŠ” '유대 민족'ì„ ì§€ì¹­í•©ë‹ˆë‹¤. ê·¸ëŸ°ë° ë¡œë§ˆ ë³‘ì‚¬ë“¤ì´ ì˜·ì„ ë„¤ 깃으로 ë‚˜ëˆ”ìœ¼ë¡œì¨ ì˜·ì˜ í˜•ì²´ê°€ 없어졌으니 ì´ìФë¼ì—˜ì´ë¼ëŠ” 나ë¼ê°€ ë§í•´ 없어질 ê²ƒì„ ì˜ë¯¸í•˜ëŠ” 것ì´ì§€ìš”. 하지만 옷 ì¡°ê°ì€ 남았으니 나ë¼ëŠ” ì—†ì–´ì ¸ë„ ì´ìФë¼ì—˜ì´ë¼ëŠ” ì´ë¦„ë§Œì€ ë‚¨ì„ ê²ƒì„ ë‚˜íƒ€ëƒ…ë‹ˆë‹¤. ì˜ˆìˆ˜ë‹˜ì˜ ê²‰ì˜·ì´ ë„¤ 깃으로 나뉜 것처럼, ê²°êµ­ 나ë¼ê°€ ë§í•´ 유대ì¸ë“¤ì´ ë™ì„œë‚¨ë¶ìœ¼ë¡œ í©ì–´ì§„ ê²ƒì„ ìš°ë¦¬ëŠ” ì´ìФë¼ì—˜ 역사ì—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ì‹­ìžê°€ì—서 ëŒì•„가신 ì§€ 40ë…„ì´ ì±„ 못 ë˜ì–´ ì˜ˆë£¨ì‚´ë ˜ì€ ë¡œë§ˆì˜ íƒ€ì´í„°ìФ ìž¥êµ°ì— ì˜í•´ 함ë½ë˜ì—ˆê³ , 성전 ê±´ë¬¼ì€ ëŒ ìœ„ì— ëŒ í•˜ë‚˜ë„ ë‚¨ì§€ 않고 무너져 버렸습니다(눅 19:43~44). ì´ìФë¼ì—˜ì´ë¼ëŠ” ì´ë¦„ë§Œ ë‚¨ì•˜ì„ ë¿ ë‚˜ë¼ê°€ 없어지니 ë°±ì„±ì€ ì‚¬ë°©ìœ¼ë¡œ í©ì–´ì ¸ í•박받거나 죽ìŒì— ì´ë¥´ë €ëŠ”ë°, ì´ê²ƒì´ ì˜¤ëŠ˜ë‚ ê¹Œì§€ë„ ìœ ëŒ€ì¸ì´ ì „ ì„¸ê³„ì— í©ì–´ì ¸ 사는 ì´ìœ ìž…니다.
ë§ˆíƒœë³µìŒ 27장 23ì ˆì„ ë³´ë©´ 빌ë¼ë„ê°€ ì˜ˆìˆ˜ë‹˜ì˜ ë¬´ì£„ë¥¼ ì¸ì •í•˜ìž ì•…ì˜ì— ì°¬ êµ°ì¤‘ì€ ë”ìš± 소리 높여 ì‹­ìžê°€ì— 못 박기를 구하는 ìž¥ë©´ì´ ë‚˜ì˜µë‹ˆë‹¤. ì´ë•Œ 빌ë¼ë„는 죄 없는 ì‚¬ëžŒì˜ ì–µìš¸í•œ 죽ìŒì— ìžì‹ ì´ 관계없다는 뜻으로 ë¬¼ì„ ê°€ì ¸ë‹¤ê°€ ì†ì„ 씻으며 "ì´ ì‚¬ëžŒì˜ í”¼ì— ëŒ€í•˜ì—¬ 나는 무죄하니 너í¬ê°€ 당하ë¼" 했지요. ì´ì— 유대ì¸ë“¤ì€ "ê·¸ 피를 우리와 우리 ìžì†ì—게 ëŒë¦´ì§€ì–´ë‹¤" 외쳤습니다.
ê·¸ëŸ°ë° ë†€ë¼ìš´ ê²ƒì€ ì´ì²˜ëŸ¼ ë§í•œ ê²ƒì´ ìœ ëŒ€ì¸ê³¼ ê·¸ ìžì†ë“¤ì—게 그대로 ë³´ì‘ë˜ì—ˆë‹¤ëŠ” ì ìž…니다. ê³§ ì´ìФë¼ì—˜ì´ 함ë½ë  ë•Œì— ë¬´ë ¤ 110ë§Œ ëª…ì˜ ìœ ëŒ€ì¸ì´ 학살ëì„ ë¿ ì•„ë‹ˆë¼ 2ì°¨ 세계대전 때ì—는 약 6백만 ëª…ì˜ ìœ ëŒ€ì¸ì´ ë‚˜ì¹˜ì— ì˜í•´ í¬ìƒë지요. ê·¸ë“¤ì€ ë²Œê±°ë²—ê¸´ 채 참혹하게 죽어 갔는ë°, ì´ëŠ” ê·¸ë“¤ì´ êµ¬ì„¸ì£¼ë¥¼ 알아보지 못하고 유대ì¸ì˜ 왕ì´ë©° 죄가 없는 ì˜ˆìˆ˜ë‹˜ì„ ë²Œê±°ë²—ê²¨ ì‹­ìžê°€ì— 처형하면서 "ê·¸ 피를 우리와 우리 ìžì†ì—게 ëŒë¦´ì§€ì–´ë‹¤"ë¼ê³  ë§í•œ ê²ƒì´ ì—„ì²­ë‚œ 환난으로 임한 것입니다.


3. ì˜ˆìˆ˜ë‹˜ì˜ ì†ì˜·ì„ 나누지 않고 ì œë¹„ë½‘ì€ ì„­ë¦¬

ì˜ˆìˆ˜ë‹˜ì˜ ì†ì˜·ì€ 호지 않고 통으로 ì§  것ì´ë¼ 했습니다(ìš” 19:23). 여기서 'ì†ì˜·'ì€ 'ì‚¬ëžŒì˜ ë§ˆìŒ'ì„ ì˜ë¯¸í•˜ì§€ìš”. ì´ìФë¼ì—˜ì˜ 왕ì´ì‹  ì˜ˆìˆ˜ë‹˜ì˜ ì†ì˜·ì€ ì´ìФë¼ì—˜ 후ì†ë“¤ì˜ 마ìŒì„ ì˜ë¯¸í•˜ë©° í•˜ë‚˜ë‹˜ì— ëŒ€í•œ ê·¸ë“¤ì˜ ì‹ ì•™ì„ ë‚˜íƒ€ëƒ…ë‹ˆë‹¤.
í•˜ë‚˜ë‹˜ì˜ ë°±ì„± ì´ìФë¼ì—˜ì˜ 시조는 야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ì•¼ê³±ì˜ ì´ë¦„ì„ ì´ìФë¼ì—˜ë¡œ 바꾸시고, ê·¸ì˜ ì—´ë‘ ì•„ë“¤ë¡œ ì´ìФë¼ì—˜ 나ë¼ì˜ ì—´ë‘ ì§€íŒŒë¥¼ 형성하셨습니다(ì°½ 35:10~11). ì´ë¡œì¨ ì´ìФë¼ì—˜ì€ ì•¼ê³±ì˜ ì—´ë‘ ì•„ë“¤ì— ì˜í•´ ê¸°í‹€ì´ í˜•ì„±ë˜ì–´ 순수한 단ì¼ë¯¼ì¡±ìœ¼ë¡œ 내려오다가 ì†”ë¡œëª¬ì™•ì˜ ì•„ë“¤ì¸ ë¥´í˜¸ë³´ì•” 때 ë¶ì´ìФë¼ì—˜ê³¼ 남유다로 나뉘었지요. ê·¸ 후 ë¶ì´ìФë¼ì—˜ì€ ì´ë°©ì¸ê³¼ 결합하였으나 남유다는 단ì¼ë¯¼ì¡±ìœ¼ë¡œ 내려왔는ë°, ì´ë“¤ì´ 바로 오늘날 유대ì¸ì´ë¼ 불립니다.
그러므로 ì˜ˆìˆ˜ë‹˜ì˜ ì†ì˜·ì´ '호지 아니하고 위ì—서부터 통으로 ì§  것'ì´ë¼ëŠ” ë§ì”€ì€, ê³§ 'ì´ìФë¼ì—˜ì´ë¼ëŠ” 나ë¼ëŠ” ì•¼ê³±ì— ì˜í•´ í˜•ì„±ëœ ì´í›„ í˜„ìž¬ì— ì´ë¥´ê¸°ê¹Œì§€ ì´ë°©ì¸ê³¼ 섞ì´ì§€ ì•Šì€ ìˆœìˆ˜í•œ 단ì¼ë¯¼ì¡±'ì´ë¼ëŠ” 뜻입니다.
ì´ìФë¼ì—˜ ë°±ì„±ì€ ì•„ë¸Œë¼í•¨ì„ 믿ìŒì˜ ì¡°ìƒìœ¼ë¡œ í•´ ì„ íƒë°›ì€ 백성으로서 ì°¸ ì‹ ì´ì‹  하나님 한 ë¶„ë§Œì„ ì²«ì§¸ë¡œ 섬겨 왔습니다. ë”°ë¼ì„œ ì˜ˆìˆ˜ë‹˜ì˜ ì†ì˜·ì„ 찢지 않았다는 ê²ƒì€ ë¹„ë¡ ì´ìФë¼ì—˜ ë¯¼ì¡±ì´ ë‚˜ë¼ë¥¼ 빼앗기ë”ë¼ë„ ì´ìФë¼ì—˜ì„ ì´ë£¨ëŠ” 유대ì¸ì˜ 민족정신, 즉 í•˜ë‚˜ë‹˜ì„ ì„¬ê¸°ëŠ” 마ìŒë§Œì€ 찢어지지 않고 ë³´ì „ëœë‹¤ëŠ” 것입니다.
설령 ì´ìФë¼ì—˜ì´ ì´ë°©ì¸ì—게 멸ë§í•´ ë‚˜ë¼ í˜•ì²´ê°€ 없어진다 í•´ë„ ì´ìФë¼ì—˜ ë°±ì„±ì˜ ë§ˆìŒ ì¤‘ì‹¬ì— ê³„ì‹  하나님, 즉 í•˜ë‚˜ë‹˜ì„ í–¥í•œ 마ìŒë§Œì€ ì´ë°©ì¸ë“¤ì´ 없앨 수 ì—†ìŒì„ 예언한 것ì´ì§€ìš”. 변함없는 ì¤‘ì‹¬ì„ ì†Œìœ í•œ 민족ì´ê¸°ì— 하나님께서는 ì´ìФë¼ì—˜ì„ 선민으로 íƒí•˜ì‹œê³  ì„±ê²½ì— ê¸°ë¡í•œ 대로 하나님 나ë¼ì™€ ì˜ë¥¼ ì´ë£¨ì‹œëŠ” 것입니다.
오늘날ì—ë„ ê·¸ë“¤ì˜ ìœ¨ë²•ì„ ì§€í‚¤ë ¤ëŠ” 변함없는 ì¤‘ì‹¬ì„ ë³¼ 수 있는ë°, ì´ëŠ” 변함없는 ì•¼ê³±ì˜ ì¤‘ì‹¬ì„ í˜ˆí†µìœ¼ë¡œ ì´ì–´ë°›ì•˜ê¸° 때문입니다. ì´ëŸ¬í•œ ì´ìФë¼ì—˜ì€ 나ë¼ë¥¼ ìžƒì€ ì§€ 오랜 ì„¸ì›”ì´ ì§€ë‚œ 1948ë…„ 5ì›” 14ì¼ì— ë…립하여 ì „ 세계를 놀ë¼ê²Œ 하였습니다. ë˜í•œ ë…립한 ë’¤ ì§§ì€ ê¸°ê°„ì— ì„ ì§„êµ­ê°€ë¡œ 떠오르면서 그들 ë¯¼ì¡±ì˜ ìš°ìˆ˜ì„±ì„ ì „ ì„¸ê³„ì— ë‹¤ì‹œ 한번 확ì¦í•˜ì˜€ì§€ìš”.
호지 않고 위ì—서부터 통으로 ì§  ì˜ˆìˆ˜ë‹˜ì˜ ì†ì˜·ì„ 로마 ë³‘ì‚¬ë“¤ì´ ì°¢ì„ ìˆ˜ ì—†ì—ˆë˜ ê²ƒì²˜ëŸ¼, ì–´ë–¤ ì´ë°©ì¸ë„ í•˜ë‚˜ë‹˜ì„ ì„¬ê¸°ëŠ” ì´ìФë¼ì—˜ ë°±ì„±ì˜ ë§ˆìŒì„ ë¹¼ì•—ì„ ìˆ˜ 없었고 ê²°êµ­ ê·¸ë“¤ì€ ë…립하여 í•˜ë‚˜ë‹˜ì˜ ì„ ë¯¼ìœ¼ë¡œì„œ í•˜ë‚˜ë‹˜ì˜ ëœ»ì„ ì´ë£¬ 것입니다.


4. ì–‘ì†ê³¼ ì–‘ë°œì— ëª» 박혀 피 í˜ë¦¬ì‹  예수님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í° ëª»ì´ ìƒì‚´ì„ 뚫고 들어오는 ê³ í†µë¿ ì•„ë‹ˆë¼ ì²´ì¤‘ìœ¼ë¡œ ì¸í•´ 못 박힌 ì–‘ì†ê³¼ ì–‘ë°œì´ ì°¢ê¸°ëŠ” ê³ í†µì„ ë‹¹í•˜ì…”ì•¼ 했습니다.
ì‹­ìžê°€ ì²˜í˜•ì€ ì£½ì„ ë•Œê¹Œì§€ ì‹­ìžê°€ì— 매달려 피와 ë¬¼ì„ ë‹¤ ìŸì•„야 í•˜ê¸°ì— ê°ˆì¦ê³¼ 탈진으로 ì¸í•œ ê³ í†µì„ ë„저히 ì§ìž‘í•  수 없습니다. ë”구나 강렬한 í–‡ë³•ì´ ë‚´ë¦¬ì¬ëŠ” 사막 ì§€ëŒ€ì˜ ë…한 벌레 떼가 피 냄새를 ë§¡ê³  몰려와 ìƒì²˜ 난 몸과 ì–‘ì†ê³¼ ì–‘ë°œì—서 í르는 피를 빨아 먹고, 악한 ë°±ì„±ì€ ì£„ 없는 ì˜ˆìˆ˜ë‹˜ì„ í¬ë¡±í•˜ê³  ì†ê°€ë½ì§ˆí•˜ë©´ì„œ ì¹¨ì„ ë±‰ê³  갖가지 ìš•ì„¤ì„ í¼ë¶€ì—ˆì§€ìš”. ì´ê°™ì´ ì˜ˆìˆ˜ë‹˜ì˜ ì‹­ìžê°€ ì²˜í˜•ì€ ì°¸ìœ¼ë¡œ ì¸ê°„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엄청난 ê³ í†µì´ ë”°ë¥´ëŠ” 것ì´ì—ˆìŠµë‹ˆë‹¤.
그러면 예수님께서 ì†ê³¼ ë°œì— ëª» 박히셔야 í–ˆë˜ ì´ìœ ëŠ” 무엇ì¼ê¹Œìš”? ì´ëŠ” 바로 ì‚¬ëžŒì´ ì†ê³¼ 발로 ì§€ì€ ëª¨ë“  죄를 대ì†í•˜ì‹œê¸° 위함입니다.
ë§ˆê°€ë³µìŒ 9장 43~45ì ˆì— "ë§Œì¼ ë„¤ ì†ì´ 너를 범죄케 하거든 ì°ì–´ ë²„ë¦¬ë¼ ë¶ˆêµ¬ìžë¡œ ì˜ìƒì— 들어가는 ê²ƒì´ ë‘ ì†ì„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ë¶ˆì— ë“¤ì–´ê°€ëŠ” 것보다 ë‚˜ìœ¼ë‹ˆë¼ ë§Œì¼ ë„¤ ë°œì´ ë„ˆë¥¼ 범죄케 하거든 ì°ì–´ ë²„ë¦¬ë¼ ì ˆëšë°œì´ë¡œ ì˜ìƒì— 들어가는 ê²ƒì´ ë‘ ë°œì„ ê°€ì§€ê³  ì§€ì˜¥ì— ë˜ì§€ìš°ëŠ” 것보다 나으니ë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ì–‘ì†ê³¼ ì–‘ë°œì— ëª» 박혀 피 í˜ë¦¬ì‹¬ìœ¼ë¡œ 우리가 ì†ê³¼ 발로 범하는 죄를 대ì†í•´ 주신 것입니다.
ì‚¬ëžŒë“¤ì€ í˜ˆê¸°ê°€ 나면 ì†ìœ¼ë¡œ ì‚¬ëžŒì„ ë•Œë¦¬ê¸°ë„ í•˜ê³  때로는 ë„ì ì§ˆê³¼ ë„ë°•ì„ í•´ 패가ë§ì‹ í•©ë‹ˆë‹¤. 그런가 하면, 발로 í­ë ¥ì„ 행하고 가지 ë§ì•„야 í•  ê³³ì— ê°€ì„œ 죄를 ì§“ê¸°ë„ í•˜ì§€ìš”. ë„둑질하려고 í•´ë„ ë°œì„ ì›€ì§ì—¬ì•¼ 합니다. 그러니 ë°œì„ ì›€ì§ì—¬ 죄 ì§“ê³  ì§€ì˜¥ì— ê°€ëŠë‹ˆ ì°¨ë¼ë¦¬ ê·¸ê²ƒì„ ìž˜ë¼ ë²„ë¦¬ê³  ì ˆëšë°œì´ë¡œ ì²œêµ­ì— ê°€ëŠ” íŽ¸ì´ ë‚«ë‹¤ëŠ” 것입니다. 게다가 눈으로 ì¢‹ì€ ê²ƒì„ ë³´ë©´ íƒì‹¬ì´ ì¼ì–´ë‚˜ê³  ë³´ì§€ ë§ì•„야 í•  ê²ƒì„ ë´„ìœ¼ë¡œì¨ ê°„ìŒë„ 합니다. 그러니 ì°¨ë¼ë¦¬ ëˆˆì„ ë¹¼ë‚´ 죄 ì§“ì§€ 않ìŒìœ¼ë¡œì¨ 천국 가는 게 낫다고 ë§ì”€í•˜ì‹œëŠ” 것ì´ì§€ìš”.
구약 시대ì—는 눈으로 죄를 지으면 ëˆˆì„ ë¹¼ì•¼ 했고 ì†ìœ¼ë¡œ 죄를 지으면 ì†ì„, 발로 죄를 지으면 ë°œì„ ìž˜ë¼ì•¼ 했으며, ì‚´ì¸í•˜ê±°ë‚˜ ê°„ìŒí•˜ë©´ ëŒë¡œ ì³ ì£½ì´ê²Œ ë˜ì–´ 있었습니다(ì‹  19:19~21). ë§Œì¼ ì‹­ìžê°€ ê³ ë‚œì´ ì—†ì—ˆë‹¤ë©´ 오늘날ì—ë„ í•˜ë‚˜ë‹˜ì˜ ë°±ì„±ì€ ì†ìœ¼ë¡œ 죄를 지으면 ì†ì„, 발로 죄를 지으면 ë°œì„ ì°ì–´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ì‹­ìžê°€ë¥¼ 지시고 ì–‘ì†ê³¼ ì–‘ë°œì— ëª» ë°•ížˆì‹¬ìœ¼ë¡œì¨ ë³´í˜ˆì„ í˜ë ¤ ì†ê³¼ 발로 짓는 죄를 ëª¨ë‘ ì”»ì–´ 주셨기 ë•Œë¬¸ì— ê·¸ëŸ´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ì˜ˆìˆ˜ë‹˜ì„ êµ¬ì„¸ì£¼ë¡œ ì˜ì ‘하면 범죄한 ì†ê³¼ ë°œì„ ìžë¥´ì§€ ì•Šì•„ë„ íšŒê°œí•˜ë©´ ìš©ì„œë°›ì„ ìˆ˜ 있고 ë” ë‚˜ì•„ê°€ ì„±ë ¹ì˜ ëŠ¥ë ¥ìœ¼ë¡œ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ì´ì²˜ëŸ¼ 우리가 믿ìŒìœ¼ë¡œ 죄 ì‚¬í•¨ì„ ë°›ìŒìœ¼ë¡œ 지옥 ë¶ˆì— ë˜ì§ë°›ì§€ 않ë„ë¡ ì˜ˆìˆ˜ë‹˜ê»˜ì„œ 참혹한 ì‹­ìžê°€ì˜ ê³ ë‚œì„ ì¹œížˆ 당하신 것입니다.
ê·¸ëŸ°ë° ìš°ë¦¬ê°€ 명심해야 í•  ê²ƒì€ í•˜ë‚˜ë‹˜ê»˜ì„œ ë¹› ê°€ìš´ë° ê³„ì‹  ê²ƒê°™ì´ ìš°ë¦¬ë„ ë¹› ê°€ìš´ë° í–‰í•˜ë©° ì§„ì • 죄를 회개하고 ëŒì´í‚¬ 때 ì£¼ë‹˜ì˜ ë³´í˜ˆë¡œ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ìš”ì¼ 1:7).
예수님께서 ìš°ë¦¬ì˜ ì£„ ë•Œë¬¸ì— ì†ê³¼ ë°œì— ëª» 박혀 고통받으셨ìŒì„ ì •ë…• 믿는 ì‚¬ëžŒì€ ë‹¤ì‹œ 죄를 범할 수가 없습니다. 범죄한 ê²ƒì„ ë§ˆìŒ ì¤‘ì‹¬ì—서 회개하고 ëŒì´ì¼°ë‹¤ë©´ ê°™ì€ ì£„ë¥¼ 반복해서 ì§€ì„ ìˆ˜ê°€ 없지요. 그래서 죄를 버리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 사는 ì‚¬ëžŒì€ ì°¸ 믿ìŒì´ 있는 ê²ƒë„ ì•„ë‹ˆê³  í•˜ë‚˜ë‹˜ì„ ì‚¬ëž‘í•˜ëŠ” ê²ƒë„ ì•„ë‹ˆë©° 구ì›ê³¼ë„ ìƒê´€ì´ 없습니다.
물론 믿ìŒì´ 약할 때는 ê±°ë“­ 범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중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죄를 버리기 위해 노력해 나가면 í•˜ë‚˜ë‹˜ê»˜ì„œë„ ìš©ì„œí•´ 주시지요. 다시 ì€í˜œë¥¼ 주시고 죄를 버릴 ëŠ¥ë ¥ì„ ì£¼ì‹­ë‹ˆë‹¤. 죄를 버리고 거룩하신 í•˜ë‚˜ë‹˜ì„ ë‹®ì•„ê°€ëŠ” ê²ƒì´ ì‚¬ëžŒì˜ ëŠ¥ë ¥ìœ¼ë¡œëŠ” 불가능하지만 í•˜ë‚˜ë‹˜ì˜ ëŠ¥ë ¥ìœ¼ë¡œëŠ” 가능하지요. 하나님 ìžë…€ë¼ë©´ 마땅히 죄를 버리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ì„±ë„ ì—¬ëŸ¬ë¶„,
ì˜ˆë£¨ì‚´ë ˜ì˜ í•¨ë½ì´ë‚˜ 유대ì¸ë“¤ì˜ 고난, ì´ìФë¼ì—˜ì˜ 멸ë§ê³¼ 재건 등 모든 ê²ƒì´ ì„±ê²½ì— ê¸°ë¡ëœ 그대로 ì´ë£¨ì–´ì¡ŒìŠµë‹ˆë‹¤. ì•„ì§ ì„±ì·¨ë˜ì§€ ì•Šì€ ê²ƒì€ ì•žìœ¼ë¡œ ì¼ì–´ë‚  ì¼ë“¤ë¡œì„œ, 그중 하나가 주님께서 우리를 ë°ë¦¬ëŸ¬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ìš°ë¦¬ì˜ ì£„ë¥¼ 사하시기 위해 ì‹­ìžê°€ë¥¼ 지신 ì£¼ë‹˜ì˜ ì‚¬ëž‘ì„ ê¸°ì–µí•˜ì—¬ 깨어 기ë„하며 ì‹ ì†ížˆ ì‹ ë¶€ ë‹¨ìž¥ì„ ë§ˆì¹˜ê³  다시 오실 ì£¼ë‹˜ì„ ë§žì´í•˜ì‹¤ 수 있기를 ì£¼ë‹˜ì˜ ì´ë¦„으로 ì¶•ì›í•©ë‹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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