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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
       
 
  
 

상 주심을 바라봄으로


1481
2023년 10월 22일 일요일


"믿음으로 모세는 …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브리서 11:24~26)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선진들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중 모세는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믿음의 행함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면 모세 선지자를 통해 상 주심을 바라보는 믿음이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은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어떤 이들은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무조건 충성 봉사하는 것이지 어떤 대가를 바라는 마음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라는 상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부귀영화를 얻어 그저 자신이 잘 먹고 잘살겠다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큰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의 보상으로 축복받아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이기적이거나 온전치 못한 마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상을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상 주실 것을 바라는 믿음이 있을 때 어떤 역경이나 시련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늘의 상급을 바라본 모세의 신앙

모세는 B. C. 1500년경,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암울한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족속이 크게 번성하자 새로 태어나는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석 달 동안 아이를 집 안에 숨겨 키우다가(히 11:23)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더 이상 숨겨둘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를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내지요. 마침 애굽 공주가 강에 목욕하러 나왔다가 모세를 발견해 건져냈고, 이를 지켜보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친어머니를 유모로 추천합니다. 이에 모세는 공주의 양자가 되어 왕궁에서 친어머니의 손에 자라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계획하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모세는 생명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애굽 왕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친어머니 밑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해 배웠고 자기 민족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인 것과 애굽 땅에서 살게 된 배경도 듣게 되었지요. 또한 앞으로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시며 큰 나라를 이루리라 약속하심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어떻게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을까요?

1) 애굽 왕자로서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버렸습니다
그 당시 애굽은 앞서가는 문명을 이룬 강대국이었기에 왕자의 권세도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왕궁에서 공주의 양자로 머무는 한 모세는 평생 부귀영화를 보장받을 수 있었지요. 그러나 모세는 이처럼 부러운 것이 없는 환경 속에서도 애굽에서 압제와 고통을 당하는 자기 민족을 해방해야겠다는 마음이 늘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굽 사람이 모세의 동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만 의분이 나서 애굽 사람을 쳐 죽이게 됩니다. 결국 그것이 발각되어 광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말지요.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왕궁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모세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히 11:24~26).
여러분이 모세의 입장이라면 어떠했겠습니까? 평생 쌓아 온 모든 것을 아무 망설임 없이 하나님을 위해 버릴 수 있겠는지요?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 대신 주님을 위해 멸시와 천대, 수치를 당해야 한다면 과연 그 길을 기쁨으로 갈 수 있을까요?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다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스스로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았기에 이 땅의 부귀영화를 포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믿음의 사람으로서 성경에 영광스러운 이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2) 어떤 고난도 참고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쳐 나온 후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를 40년간 연단하신 뒤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해방하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주셨지요.
어떤 명예나 권세 없이 애굽 왕 앞에 나가는 것이나 장정만도 60만 명이나 되는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매 순간 목숨조차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모세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갑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기세등등한 애굽 왕 앞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 달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고,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는 위기의 순간에도 믿음으로 홍해를 가르고 백성들과 마른 땅을 지나듯 바다 가운데를 건널 수 있었지요.
뒤쫓아 오던 애굽 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감격에 젖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그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모세에게 불평하기 시작하지요. 먹을 물과 양식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애굽에서 잘살고 있었는데 광야로 끌어내 죽게 한다고 원망합니다. 이전에 자신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모세는 오직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그들에게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홍해를 갈라 생명을 건져 주신 그 은혜를 망각한 백성들의 모습을 볼 때 하나님 앞에 심히 민망했을 것입니다. 이 믿음 없는 백성들을 가나안 땅까지 이끌고 갈 일을 생각하면 막막함에 절로 탄식이 나왔겠지요.
그러나 모세는 절망하거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믿음을 보고 백성들을 먹일 양식을 주십니다. '만나'라는 양식을 날마다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주셨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또다시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번에는 마실 물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번번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모세가 백성의 지도자가 된 것은 스스로 원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택함을 받고 부름을 받아 그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이지요. 더구나 그는 백성을 위해 애굽 왕자의 지위도 버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가는 강퍅한 백성들을 이끌고 머나먼 광야 길을 가야 할 책임입니다.
수많은 백성의 생활을 돌보는 것도 고생스러운데 그들이 모세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그를 원망하고 심지어 돌로 치려고까지 하였지요. 악한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반역하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은 보이지 않고 백성들의 원망이 더해 가는 현실 속에서 모세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어찌했을까요?
모세는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주는 어떤 기쁨을 바라본 것도 아니며, 현실이 힘들다고 해서 낙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장차 모든 사명을 감당한 후에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고난 속에서도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간구했습니다. 또한 사명을 억지로 감당한 것이 아니라, 온 힘과 중심을 다해 감당했지요.
그런 중심이었기에 자신을 원망하고 대적하는 백성들을 위해 대신 회개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려 하실 때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를 지극히 사랑해 '나의 온 집에 충성된 자'라 칭찬하시며 친구와 같이 대면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민 12장). 그러니 그가 천국에서는 얼마나 영화로운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행복을 누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열심히 충성하게 하시는 것은 이를 통해 마음을 연단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또한 상급을 쌓아 하늘에서 큰 영광을 얻도록 하시기 위한 사랑입니다.

3)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했습니다
모세는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 앞에 간구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을 아실 뿐 아니라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심을 마음 중심에서 믿었던 것입니다.
악한 무리가 모세를 비방하며 반역할 때도 모세는 같이 싸우거나 변론하지 않았고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맡겼습니다. 백성들이 광야 생활에 지칠 즈음, 고라가 백성들을 미혹해 모세를 대적하는 일이 생깁니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 형으로, 자신도 못 할 것이 없는데 모세와 아론이 제사장 권세를 갖고 있는 게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유력한 족장 중 250명을 꾀어 모세를 대적하지요. 고라와 함께 당을 지은 다단과 아비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모세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 일로 모세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백성들을 순식간에 멸할 것이니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이렇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죽음을 예언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땅이 갈라지면서 그들을 산 채로 삼키고 말았습니다. 고라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물건까지 모두 땅속으로 들어간 후에야 땅이 다시 합쳐졌지요(민 16:1~33).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말을 철저히 보장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소유하여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랑으로 온 집에 충성해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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