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뉴스, 만민, 만민교회, 만민뉴스, 이재록, 재록, 닥터리
2018년 9월 24일 월요일 오후 4:11
 
 

화평으로 맺는 의의 열매
최신 업데이트
만일 상대가 몹시 화났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더는 상대의 화를 돋우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 상황이 악화되기 때문입니다.
...
       
 
  
 

편벽과 거짓이 없는 지혜


156
2018년 9월 16일 일요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서 3:17~18)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이재록 목사

Senior Pastor Dr. Jaerock Lee


- 예수교연합성결회 총회장

- (사) 기독교 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

- (사) 국회사랑 구국기도 총연합회 공동총재

- 세계기독방송네트워크(GCN) 이사장

- 세계기독의사네트워크(WCDN) 이사장

- 만민국제신학교(MIS) 이사장

-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 목회학 박사, 명예신학 박사

- 만민중앙성결교회 당회장

- 기독교방송, 극동방송 등에 방송 설교

- 미국 뉴욕, 워싱턴, 볼티모어, 메릴랜드, L.A., 하와이, 일본,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페루, 러시아, 독일,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이스라엘 예루살렘, 에스토니아 등에서 연합대성회 인도




어느 날, 한 여인이 과자와 책 한 권을 사 들고 기차를 탔습니다. 그녀의 좌석은 험상궂은 청년의 옆자리였지요.

기차가 출발한 뒤 책을 읽던 그녀가 문득 청년을 보니 자기 과자를 먹고 있는 것입니다. '어? 허락도 없이 남의 과자를 먹네? 인상도 험악하더니…' 이런 생각을 하며 눈치를 주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자기 과자라고 표현하기 위해 함께 과자를 먹었는데도 청년은 개의치 않았지요.

기차가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 청년은 마지막 남은 과자를 반으로 톡 자르더니 한쪽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지요. 여인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짐을 챙기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샀던 과자가 가방 안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과자를 마음대로 먹은 것은 바로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편견이나 선입관을 가지면 사실이 아닌 일도 사실인 것처럼 확신할 때가 있습니다.

그 여인은 청년의 인상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남의 것을 먹는다고 단정해 버렸지요. 자신의 가방을 확인해 보지도 않고 친절을 베푼 상대를 나쁘게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에 대해서나, 환경에 대해서나 편벽되지 않은 마음으로 보아야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1. 무엇을 하든지 편벽이 없으려면 긍휼이 있어야

'편벽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매사에 치우침이 없다면 누구를 대하든지 한결같습니다. 외모나 경제적 여건, 학벌 등 상대가 가진 조건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지 않지요. 무엇을 하든지 편벽이 없으려면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과 긍휼이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운다 해도 그 말씀을 바르게 적용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은 "원수도 사랑하라" 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취향과 성품, 내가 옳다고 하는 것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볼록렌즈로 보면 뚱뚱해 보이고 오목렌즈로 보면 홀쭉해 보입니다. 만일 렌즈에 비치는 모습만 보고 "뚱뚱하다. 말랐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가 본 대로 말한다" 하겠지만, 분명히 실제와는 다르니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상대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없는 만큼 좌우로 치우칠 수 있으니 상대의 언행이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쉽게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이처럼 편견 속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거짓이 섞여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하고 사랑과 긍휼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어떠한 모습을 본다 해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감싸주려 하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생명을 살리는 선한 열매를 맺는 반면, 편벽됨은 판단과 정죄로 진실을 왜곡하며 생명을 잃게 만드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율법에 정통하다고 자부했지요.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편벽된 시각으로 율법을 해석하고, 이에 맞지 않는 사람은 죄인으로 단정지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치신 일을 두고도 '안식일을 범하는 악한 일'로 생각했지요. 원래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뜻은 무조건 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안식을 취하라'는 의미입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거나,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노동이 아니라 안식일에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일이지요.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편벽됨 속에서 '안식일을 어겼다'고 판단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고 거짓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2.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보려면 편벽된 시각을 버려야

많은 사람이 자신의 편벽됨으로 인해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거짓의 열매를 내고 있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야단칠 때에도 그렇습니다. 형제간에 다투었을 때 부모가 형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동생이 먼저 때렸어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만 들으면 동생의 잘못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생에게 물으니 "형이 장난감을 뺏으려고 해서 그랬어요"라고 합니다.

만일 부모가 형 말만 듣고 혼냈다면 동생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평소 형을 편애했거나 동생이 늘 말썽을 부렸다면 형 말만 믿는 부모도 있겠지요. 그러나 지혜로운 부모라면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유익과 생각에 맞춰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편벽된 시각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거짓된 언행이 나옵니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을 범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며 그 사실을 믿지 않거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며 어떻게든 허물을 덮어 주려고 합니다. 반면 평소에 싫어하던 사람이나 나쁜 선입관을 가졌던 사람의 일이라면 안 좋은 소문도 금방 믿어버립니다.


"전에도 잘못하더니 또 그러네", "그 사람 어쩐지 마음에 안 들더라" 하며 싫어하는 마음을 정당화시키기까지 하지요. 편벽된 마음이 있기에 사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소문을 쉽게 받아들이고 상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이 여러분의 눈을 피하면서 급히 지나갑니다. 바쁘거나 딴생각을 하느라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고, 시력이 나빠 못 보았거나 자신의 모습이 민망해서 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에 대한 사랑과 긍휼이 없으면, 이런 모습을 보고 나쁜 쪽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무례하다' 하거나, '내게 감정이 있나' 하고 자신의 지식과 감정 안에서 해석합니다. 이처럼 긍휼과 사랑이 없는 만큼 편벽된 시각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동원하지요.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눈이 가려져 진실을 알 수도 없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담을 받을 때에도 이미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쪽으로 치우쳐 말합니다. '어느 편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지'를 들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해도 되는지'를 묻습니다. 이런 경우는 상담을 통해 어떤 답을 들어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지요. 어떤 경우는 상담을 받을 때 전후 사정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기에 잘 분별하여 상담해야 합니다.


3. 범사에 편벽과 거짓이 없이 진실하려면

대부분의 경우, 대인관계에서 오는 갈등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막상 상대에게 직접 들어보면 사정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말만 들어서는 공의롭고 정직하게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범사에 편벽과 거짓이 없이 진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약한 사람에게 치우치는 것도 진리 안에서는 편벽된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3장 3절에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뿐만 아니라 약하고 힘없는 사람을 포괄적으로 지칭합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사람 편을 들어서도 안 되지만, 가난하고 약자라는 이유로 무조건 편벽되거나 친분이 두텁다고 정에 치우친다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흔히 강자와 약자가 다툴 때 사람들은 약자 편을 드는 것이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힘 있는 사람 편을 들면 비겁한 행동인 것처럼 여기지요.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분별하되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 분별하기를 원하십니다.

2)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면 남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면 자신이 직접 보고 듣는다 해도 진실을 정확하게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물며 남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거나 추측만으로 단정한다면 큰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공의롭게 자세히 살피지 않고 상대의 말만 믿는다면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지요.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큰 이익이 눈앞에 있다면 더 쉽게 상대의 말을 믿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이 수익성이 좋다는 말만 듣고 거액을 투자했는데 사기를 당하거나 큰 손해를 봤다면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사업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면 참고는 하되, 당사자가 다방면으로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거래할 상대가 신뢰할 만한지, 수익성이 확실히 있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하지요. 비단 사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고 듣고 판단하는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해야 마음을 더 반듯하게 만들고 공정하게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어떤 말을 하거나 무엇을 생각할 때 감정과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친분이 있거나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합니다. 가령, 친하지 않은 사람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교만해서 질서를 어긴다. 불의하다"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이나 친한 사람이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이웃집 아이에게 맞고 들어오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감정부터 올라오는 부모의 모습을 표현한 말입니다. 내 아이가 때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맞은 상처만 보고 화를 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회의 중에 평소 자신이 싫어하던 사람이 의견을 내면 그 의견 자체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친한 사람이 의견을 내면 더 유연한 자세를 취하지요. 이처럼 편벽된 마음이 있으면 쉽게 눈이 가려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어떤 말을 하거나 무엇을 생각할 때에 자신의 마음에 감정이나 사심은 없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사람과 관계된 일이라면 더욱 공정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하지요. 특히 자신이 직분상 윗사람이라면 더욱 근신하며 절제해야 합니다. 자신이 볼 때 치우치지 않게 분별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한 것도 남들이 보기에는 정과 욕심이라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모든 것을 선하게 생각하고 진리로 분별하는 편벽과 거짓이 없는 지혜

우리가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면 사람의 마음이나 일의 전후 상황까지도 정확히 분별이 됩니다. 진리에 비추어 상대의 마음을 분별하고, 어떠한 것도 악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진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편벽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성결되어야 합니다. 곧 미움, 혈기, 시기, 욕심, 판단, 정죄, 자존심, 교만 등 마음의 죄악들을 모두 버려야 하지요.

이렇게 성결되어 무엇이든지 선으로 보고 느끼며, 선으로 생각해야 올바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선하게 생각하며 진리로 분별하니 당연히 판단 정죄도 나오지 않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기준에 맞춰 판단하게 되므로 오해하거나 상처를 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사랑이 없으므로 자신에게는 들보와 같이 큰 죄가 있음도 알지 못하고, 편벽과 거짓 속에서 상대의 티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신속하게 소유하여 편벽된 시각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깊은 마음속의 죄악까지도 버림으로 수정같이 맑고 보석같이 아름다운 마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공의롭고 정직하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추천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