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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4일 수요일 오전 10:2
 
 

사랑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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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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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7일 일요일


"…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8:1~11)

사랑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우리를 행복하고 가슴 설레게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사는 날 동안 변함없이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생명을 다해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며 결국은 썩어지고 변질되는 사랑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기쁨과 소망과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함이 없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오직 '영적인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며 하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으며 그 높이와 넓이와 깊이가 무한합니다.

죄인 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참혹한 형벌에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꺼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나타내 보이셨지요. 이 사랑은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었고, 천국을 소망한다 말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1. 용서와 긍휼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마음 중심에서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한이 있어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원하셨지요.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 나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고 묻지요.



여인은 모세의 율법대로 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율법대로 돌로 쳐서 죽이라" 명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겨 살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 쓰셨습니다. 그리고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말씀하십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쓰셨을까요?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의 죄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움, 혈기, 욕심, 도적질, 간음, 교만 등 일반적인 죄목들을 기록하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 죄목들이 자신에게 해당되는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몸을 굽혀 땅에 쓰실 때는 사람들의 낯빛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그곳에 둘러선 사람들이 범죄한 정황을 '언제, 어디서, 어떤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쓰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적히는 것을 보면서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 아닌 이상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었습니다.

한 명, 한 명 돌을 내려 놓고 자리를 뜹니다. 자신의 죄를 보면서도 그 여인을 돌로 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정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모두가 떠나고 오직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만 남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지요. 아무리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 해도 계속 죄 가운데 살면 여인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고 간절히 당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물론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신다 해서 모두가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되어 구원받는 사람도 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며 악을 발하다가 결국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사실을 아시고, 각 사람의 중심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렇다고 '이는 회개할 것이니 긍휼히 여기고, 저는 구원의 기회를 줘도 회개하지 못할 테니까 그냥 포기하자' 하지 않으셨지요. 아니면 '저렇게 악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해야 하나' 고민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서받을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긍휼을 베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선으로 대해주어도 고마운 줄 모르고 악을 행하면서도 뻔뻔한 사람을 보면 '저는 상대할 가치가 없다' 하고 외면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도 끝까지 사랑하며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요.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달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모두가 죄인이었고, 사망의 형벌을 받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로 용서받을 수 있었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상대를 긍휼히 여기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자신의 죄가 기록된 것을 보면서도 상대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분별한다' 하면서 상대를 쉽게 단정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저 사람을 지켜보니 강퍅해서 진리를 알려줘도 잘 깨닫지 못한다' 하거나, '저 사람은 늘 잘하겠다고 말로는 고백하지만 나중에 보면 변화가 없는 사람이다' 규정하지요. 그런 사람에게 진액을 쏟아가며 보살필만한 가치가 적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분별이 아니라 긍휼 없는 마음으로 상대를 판단 정죄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지요. 아무리 부족한 사람을 대할 때라도 그를 한 영혼으로 본다면 긍휼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2.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상대에게 큰 은혜를 입었거나 상대의 사랑을 확인했을 때는 누구나 뜨거운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좋은 때뿐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도 변함이 없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변함이 없지요.

하나님을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로 인해 어떤 고난이나 불이익을 당한다 해도 변개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연단을 받을 때도 하나님께 서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해도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심한 매를 맞고 피 흘리며 감옥에 갇혔을 때나 험한 바다에서 하루 낮과 밤을 표류할 때도 중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지요.

'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충성했는데 왜 매를 맞고 부끄러움을 당해야 하나. 왜 나를 이렇게 바다에 빠지게 하시나' 하는 서운한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히 나 같은 죄인이 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인해 고난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격스러워 했지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는 늘 편안하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장 8~9절에 보면,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옵니다.

저 역시 이렇게 죽은 것처럼 낮아지는 시간도 있었고 너무나 마음 아픈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만 했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이런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사나 죽으나 저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것이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찌끼와 같이 낮아진다 해도,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을 맞는다 해도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백할 뿐이지요.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뜨거우면 하나님께 생명도 드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평생 드리고 드렸는데 또다시 전부를 드려야 한다면, 과연 처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을까요?

물질도, 충성도, 건강도 또다시 드려야 한다면, 그래도 행복하게 드릴 수 있을까요? 진정 사랑한다면, 그렇게 드렸는데도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낮은 자리에 처한다 해도 서운함이나 오해가 없습니다. 변함없는 사랑을 이루면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게 됩니다.


3. 마음을 헤아려 행하는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기준에 맞춰서 사랑을 줍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받기를 원하지요.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입장이 되고 상대의 마음이 되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주지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오해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상대의 마음을 얻고자 할 때에는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기뻐하는지 세밀하게 살핍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는 더욱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사랑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이루는 것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온전히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사명이라 해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루하루를 편히 지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셨는지 깊이 헤아리셨기 때문에 쉬시지 못하고 드시지 못한다 해도 한 영혼이라도 더 치료하고 가르치시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사역하셨지요.

마침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도 "아버지 사랑합니다. 내가 아프고 힘들지만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고백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것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안에 넘치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 모든 고난을 능히 감당할 수 있나이다. 애통하지 마시고 눈물을 거두소서" 하면서 하나님을 오히려 위로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장성한 자녀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명을 감당할 때에도 그 모습과 열매가 달라집니다. 일을 이루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이루는 과정과 결과 모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이루기 위해 진액을 다 쏟게 되지요.

영혼들을 맡아 심방한다 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행한다면 열심히 찾아가기만 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든 그 영혼이 잘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상대의 영혼이 잘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지요. 한 번을 만나도 상대에게 은혜를 입힐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를 쌓아서 만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스스로도 영혼을 변화시키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뜨겁게 사모하게 되지요.

또 진리를 가르친다 해도 내 마음대로 말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반발하게 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여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를 받으며 자신을 낮추는 마음으로 대화를 함으로 상대가 마음을 열고 진리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 원한다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선과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4장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진정한 사랑을 상고하며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용서와 긍휼이 끝이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으며, 상대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리는 진정한 사랑을 이루어 아버지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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