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¹Î´º½º, ¸¸¹Î, ¸¸¹Î±³È¸, ¸¸¹Î´º½º, ÀÌÀç·Ï, Àç·Ï, ´ÚÅ͸®
2024ë…„ 5ì›” 18ì¼ í† ìš”ì¼ ì˜¤í›„ 4:25
 
 

ì˜ì¸ì€ 믿ìŒìœ¼ë¡œ 살리ë¼
ÃֽŠ¾÷µ¥ÀÌÆ®
"ê·¸ ì¼ í›„ì— í•˜ë‚˜ë‹˜ì´ ì•„ë¸Œë¼í•¨ì„ 시험하시려고 그를 ë¶€ë¥´ì‹œë˜ â€¦ 네 아들 네 사랑하는 ë…ìž ì´ì‚­ì„ ë°ë¦¬ê³  모리아 땅으로 가서 ë‚´ê°€ 네게 지시하는 í•œ ì‚° 거기서 그를 번제로 ë“œë¦¬ë¼ â€¦
ê·¸ 아들 ì´ì‚­ì„ 결박하여 단 나무 ìœ„ì— ë†“ê³  ì†ì„ 내밀어 ì¹¼ì„ ìž¡ê³  ê·¸ ì•„ë“¤ì„ ìž¡ìœ¼ë ¤ 하ë”니 …
ê·¸ ìˆ˜ì–‘ì„ ê°€ì ¸ë‹¤ê°€ ì•„ë“¤ì„ ëŒ€ì‹ í•˜ì—¬ 번제로 드렸ë”ë¼"(창세기 22:1~13) ...
       
 
  
 

í•˜ë‚˜ë‹˜ì€ ë¹›ì´ì‹œë¼
'í•˜ë‚˜ë‹˜ì€ ë¹›ì´ì‹œë¼' 시리즈 1

6979
2018ë…„ 10ì›” 21ì¼ ì¼ìš”ì¼


당회장 ì´ìž¬ë¡ 목사


"우리가 ì €ì—게서 듣고 너í¬ì—게 전하는 소ì‹ì´ ì´ê²ƒì´ë‹ˆ 곧 í•˜ë‚˜ë‹˜ì€ ë¹›ì´ì‹œë¼ ê·¸ì—게는 ì–´ë‘ì›€ì´ ì¡°ê¸ˆë„ ì—†ìœ¼ì‹œë‹ˆë¼" (요한ì¼ì„œ 1:5)



ë¹›ì´ì‹  í•˜ë‚˜ë‹˜ì„ ë§Œë‚˜ ë” ì´ìƒ ì–´ë‘움 ê°€ìš´ë° ê±°í•˜ì§€ ì•Šê³  ì˜¤ì§ ë¹› ê°€ìš´ë° ê±°í•˜ë©´ 모든 ê²ƒì´ í˜•í†µí•˜ê²Œ 풀리며 ê°ì¢… ì¸ìƒì˜ ë¬¸ì œë“¤ì„ ì‹œì›í•˜ê²Œ í•´ê²° ë°›ì„ ìˆ˜ 있습니다

아무리 ì–´ë‘ì›€ì´ ì§™ì€ ë°¤ì´ë¼ë„ ì¼ë‹¨ íƒœì–‘ì´ ë– ì˜¤ë¥´ë©´ ì–´ë‘ì›€ì€ ì–´ë””ë¡ ê°€ 사ë¼ì§‘니다. 마찬가지로 ë¹› ê°€ìš´ë° ê±°í•˜ëŠ” 사람ì—게는 태양 ì•žì— ì–´ë‘ì›€ì´ ì‚¬ë¼ì§€ëŠ” 것처럼 문제가 í•´ê²°ë˜ê³  ì‘답과 ì¶•ë³µì´ ìž„í•˜ë©° ë” ë‚˜ì•„ê°€ 주변 ì‚¬ëžŒë“¤ë„ ë¹›ìœ¼ë¡œ ì¸ë„í•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빛과 ì–´ë‘ì›€ì€ ì˜ì ìœ¼ë¡œ ë¬´ì—‡ì„ ì˜ë¯¸í•˜ëŠ” 것ì¼ê¹Œìš”? ë˜í•œ 우리가 ì–´ë‘ì›€ì„ ë²—ê³  ë¹› ê°€ìš´ë° ê±°í•˜ë ¤ë©´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ë¹›ì˜ ê·¼ì›ì´ ë˜ì‹œëŠ” 하나님

ìš°ì£¼ë§Œë¬¼ì„ ì°½ì¡°í•˜ì‹  하나님께서는 질병ì´ë‚˜ 사업터, ê°€ì •ì˜ ì–´ë–¤ 문제든 능치 못할 ì¼ì´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í•˜ë‚˜ë‹˜ì„ ë§Œë‚˜ëŠ” ê²ƒì´ ê°ì¢… 문제를 í•´ê²° ë°›ì„ ìˆ˜ 있는 가장 확실한 길ì´ë©°, 무엇보다 소중한 ì˜ìƒì„ 얻는 길입니다. ì´ê²ƒì´ ì°¸ìž„ì„ ì•„ëŠ” 사람ì´ë¼ë©´ 누구나 í•˜ë‚˜ë‹˜ì„ ë§Œë‚˜ê³  싶어 í•  것입니다.

í•˜ë‚˜ë‹˜ì€ ë¹›ì´ì‹œê¸°ì— 누구든지 ë¹›ì„ ë”°ë¼ ë‚˜ì˜¤ê¸°ë§Œ 하면 ê·¸ ê°€ìš´ë° ê³„ì‹  í•˜ë‚˜ë‹˜ì„ ë§Œë‚  수 있습니다. ë¹›ì€ ì˜ì ìœ¼ë¡œ ì–´ë‘ì›€ì´ ì „í˜€ 없는 ì˜ì›í•˜ê³  온전하신 í•˜ë‚˜ë‹˜ì„ ì˜ë¯¸í•©ë‹ˆë‹¤. 야고보서 1장 17ì ˆì— í•˜ë‚˜ë‹˜ì€ ë³€í•¨ë„ ì—†ìœ¼ì‹œê³  회전하는 그림ìžë„ 없으시다고 했습니다.

ì´ì²˜ëŸ¼ ë¹›ì´ëž€ ì˜ì ìœ¼ë¡œ '하나님 ìžì²´ë¥¼ 가리키는 것으로 ìµœê³ ì˜ ì™„ë²½í•¨ì„ ë‚˜íƒ€ë‚´ëŠ” 표현'입니다. 우리가 ì–´ë–¤ 단어로 í•˜ë‚˜ë‹˜ì„ í‘œí˜„í•˜ëŠ” ê²ƒì€ ë¶ˆê°€ëŠ¥í•˜ì§€ë§Œ, ì´ ë•…ì˜ ê²ƒìœ¼ë¡œ 설명하고 나타내야 ì‚¬ëžŒì´ ì´í•´í•  수 ìžˆê¸°ì— 'ë¹›'ì´ë¼ëŠ”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2. 믿ìŒ, ì„ (å–„), ì˜(義), ì˜(靈), ë¹›ê³¼ì˜ ê´€ê³„

ì‹ ì•™ìƒí™œì„ 시작하면서 ì²˜ìŒ ë°°ìš°ëŠ” ê²ƒì€ ë°”ë¡œ '믿ìŒ'입니다. "í•˜ë‚˜ë‹˜ì´ ì„¸ìƒì„ ì´ì²˜ëŸ¼ 사랑하사 ë…ìƒìžë¥¼ 주셨으니 ì´ëŠ” 저를 믿는 ìžë§ˆë‹¤ 멸ë§ì¹˜ ì•Šê³  ì˜ìƒì„ 얻게 하려 하심ì´ë‹ˆë¼"(ìš” 3:16) ë§ì”€í•œ 대로 예수 그리스ë„를 믿ìŒìœ¼ë¡œ 죄 사함 받아야 ì˜ì›í•œ ìƒëª…ì„ ì–»ì„ ìˆ˜ 있고 ì²œêµ­ì„ ì†Œìœ í•  수 있기 때문ì´ì§€ìš”.

ì‹ ì•™ 안ì—ì„œì˜ ë¯¿ìŒì€ ë‘ ê°€ì§€ë¡œ 나눌 수 있습니다. 육ì ì¸ 믿ìŒì€ 단지 성경 ë§ì”€ì„ 들어서 아는 지ì‹ì ì¸ 믿ìŒìœ¼ë¡œì„œ í–‰í•¨ì´ ì—†ëŠ” ì£½ì€ ë¯¿ìŒì„ ë§í•©ë‹ˆë‹¤. 반면 ì˜ì ì¸ 믿ìŒì€ 무ì—ì„œ 유가 창조ë˜ëŠ” ê²ƒì„ ë§ì”€ 그대로 믿는 믿ìŒìœ¼ë¡œì„œ ì‚° 믿ìŒ, 즉 í–‰í•¨ì´ ë”°ë¥´ëŠ” 참믿ìŒìž…니다.

그러면 ì˜ì ì¸ 믿ìŒì„ 소유하여 ê¶ê·¹ì ìœ¼ë¡œ ì´ë£¨ê³ ìž 하는 ê²ƒì€ ë¬´ì—‡ì¼ê¹Œìš”? 첫 사람 ì•„ë‹´ì˜ ë²”ì£„ ì´í›„ ìžƒì—ˆë˜ í•˜ë‚˜ë‹˜ì˜ í˜•ìƒì„ ë˜ì°¾ëŠ” 것입니다. 즉 ì„  ìžì²´ì´ì‹  í•˜ë‚˜ë‹˜ì„ ë‹®ì•„ê°€ëŠ” 것으로 모든 ì•…ì˜ ëª¨ì–‘ì„ ë²„ë¦¬ê³  ì˜¤ì§ 'ì„ 'ì„ ì´ë£¨ëŠ” 것ì´ì§€ìš”. ì´ì²˜ëŸ¼ ì‹ ì•™ìƒí™œì„ 하면서 얼마나 ì„ ì„ ì´ë£¨ì—ˆëŠ”지 ì•Œ 수 있는 ê¸°ì¤€ì´ ë°”ë¡œ 'ì˜'입니다.

여기서 ì˜ëž€ '죄를 버리고 í•˜ë‚˜ë‹˜ì˜ ë§ì”€ì„ 지켜 행하며 믿ìŒì„ 좇아 순종해 나가는 것'으로, ë‚´ ìƒê°ì´ë‚˜ 경험, ë‚´ 지ì‹ì— 맞지 ì•Šì•„ë„ ì§„ë¦¬ë¥¼ 좇아 ì˜¤ì§ "아멘" 하고 좇는 ê²ƒì„ ì˜ë¯¸í•©ë‹ˆë‹¤. 그러므로 í•˜ë‚˜ë‹˜ì˜ ìžë…€ë¼ë©´ ë³€í•¨ì—†ì´ ì˜ë¥¼ 행해야 í•˜ëŠ”ë° ì‹¤ìƒì€ 어떻습니까?

가령, '용서하ë¼'는 ë§ì”€ì— ì€í˜œë¥¼ 받아 처ìŒì—는 용서하다가 ìžì‹ ì˜ 유ìµì— 맞지 않는 ìƒí™©ì„ 만나면 ìƒëŒ€ë¥¼ 용서하지 못합니다. ì´ëŠ” ë‚´ ì•ˆì— ë³€í•˜ëŠ” ì†ì„±, 곧 ìœ¡ì´ ìžˆê¸° ë•Œë¬¸ì— ê³„ì†ì ìœ¼ë¡œ ì˜ë¥¼ 행치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ì¼í” 번씩 ì¼ê³± 번ì´ë¼ë„ 용서하ë¼' 하셨으니 ìš©ì„œí•˜ë˜ ë까지 용서해야 합니다. ì´ê²ƒì´ 바로 변치 않는 ì˜ì´ë©°, ì´ëŸ° ì˜ì„ ì´ë£¨ê¸° 위해 반드시 필요한 ê²ƒì´ ì‚¬ëž‘ì´ì§€ìš”. 예수님께서 온 ì¸ë¥˜ì˜ 죄를 대ì†í•´ 주시기 위해 ì‹­ìžê°€ì— 달려 ëŒì•„가신 ì˜ì˜ í–‰ë™ë„ 바로 ì‚¬ëž‘ì´ ìžˆì—ˆê¸°ì— ê°€ëŠ¥í–ˆìŠµë‹ˆë‹¤(롬 5:18).


그러므로 'ì˜'ê°€ ì‚¬ëž‘ì„ í†µí•´ í•˜ë‚˜ì˜ ì™„ì„±ëœ ê²°ì •ì²´ë¡œ 나오게 ëœ ê²ƒì´ 'ì˜'ì´ë©°, ì˜ìœ¼ë¡œ 들어오면 í•˜ë‚˜ë‹˜ì„ ë¯¿ê³  순종하여 행하는 ê²ƒì— ë³€í•¨ì´ ì—†ìŠµë‹ˆë‹¤. ì´ëŸ° ì˜ì˜ ëª¨ìŠµì´ ëª¨ë“  분야ì—ì„œ 온전히 ì´ë£¨ì–´ì¡Œì„ 때가 바로 '온 ì˜'ì´ë©°(ì‚´ì „ 5:23), 온 ì˜ì„ ì´ë£¨ë©´ 행하는 것마다 'ë¹›'으로 나타납니다. 가는 곳마다 í•˜ë‚˜ë‹˜ì˜ ì˜ê´‘ì„ ë“œëŸ¬ë‚´ê³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역사가 나타나지요. 즉 'ì˜'ì´ ë‚´ë©´ì ì¸ ì†ì„±ì„ 표현한 것ì´ë¼ë©´, 'ë¹›'ì€ ì´ ë‚´ë©´ì ì¸ ê²ƒì´ ë°–ìœ¼ë¡œ ë‚˜íƒ€ë‚¬ì„ ë•Œì˜ ì†ì„±ì„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íƒœì–‘ì„ ê°€ë¦¬ì¼œ "태양"ì´ë¼ê³  ë§í•˜ì§€ë§Œ ë§‰ìƒ ìš°ë¦¬ê°€ 보는 ê²ƒì€ íƒœì–‘ë¹›ì´ì§€ìš”. 즉 "í•˜ë‚˜ë‹˜ì€ ì˜ì´ì‹œë‹ˆ"(ìš” 4:24)ë¼ê³  하면서 "í•˜ë‚˜ë‹˜ì€ ë¹›ì´ì‹œë¼"ê³  í•œ 것ì€, 하나님께서는 ë³€í•¨ì´ ì—†ìœ¼ì‹  온전한 ì˜ì´ì‹ ë° ì´ ì˜ì´ 우리ì—게 나타나는 ê²ƒì€ ë¹›ì´ê¸°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온 ì˜ì˜ ë‹¨ê³„ì— ì´ë¥´ëŸ¬ì•¼ë§Œ ë¹›ì„ ë°œí•˜ëŠ” ê²ƒì´ ì•„ë‹ˆë¼ ë¹„ë¡ ì´ˆì‹ ìžë¼ë„ ê·¸ ë‹¨ê³„ì— ë§žëŠ” ë¹›ì„ ë‚˜íƒ€ë‚¼ 수 있습니다.

ì—베소서 5장 9ì ˆì— "ë¹›ì˜ ì—´ë§¤ëŠ” 모든 착함과 ì˜ë¡œì›€ê³¼ ì§„ì‹¤í•¨ì— ìžˆëŠë‹ˆë¼" 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착함ì´ëž€ 곧 'ì„ 'ì„ ë§í•˜ê³ , ì˜ë¡œì›€ì´ëž€ ì„ ì˜ ê¸°ì¤€ì´ ë˜ëŠ” 'ì˜'를 ë§í•˜ë©°, 진실함ì´ëž€ 곧 변함없는 'ì˜'ì„ ë§í•©ë‹ˆë‹¤. 그러므로 ë¹›ì˜ ì—´ë§¤ì—는 반드시 ì„ ì´ ë‚˜íƒ€ë‚˜ë˜ ì˜ì˜ í–‰í•¨ì´ ë³€í•¨ì—†ëŠ” ì˜ì˜ 모습으로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 ì•„ì§ ì˜ì— ì´ë¥´ì§€ 못했다면 ê·¸ 사람ì—게 맞는 ì„ ì˜ ë‹¨ê³„ì˜ ëª¨ìŠµì´ ì˜ì˜ í–‰í•¨ì„ í†µí•´ 나오지만, ìœ¡ì´ ìžˆëŠ” ë§Œí¼ ìƒí™©ì— ë”°ë¼ ë³€í•  여지가 있지요. 즉 "믿습니다" 하며 ë™ì¼í•œ ê³ ë°±ì„ í•´ë„ ê° ì‚¬ëžŒë§ˆë‹¤ ì„ ê³¼ ì˜, ì˜ê³¼ ë¹›ì´ ë‹¤ë¥´ê¸° ë•Œë¬¸ì— í•˜ë‚˜ë‹˜ì˜ ì‚¬ëž‘ê³¼ ì€ì´ì„ 입는 ê²ƒë„ ë‹¤ë¦…ë‹ˆë‹¤. 그러나 ì˜ì˜ ë‹¨ê³„ì— ì´ë¥´ë©´ ìƒëŒ€ë¥¼ ê°ë™ì‹œí‚¬ 만한 ì„ ì´ ë³€í•¨ì—†ëŠ” ì˜ì˜ í–‰ë™ì„ 통해 나타내고, 온 ì˜ìœ¼ë¡œ ì´ë£¨ë©´ 모든 분야ì—ì„œ ìµœê³ ì˜ ì„ ì˜ ë§ˆìŒìœ¼ë¡œ 믿ìŒê³¼ 순종과 í–‰í•¨ì˜ ì˜ë¥¼ ë³€í•¨ì—†ì´ í–‰í•©ë‹ˆë‹¤.

믿ìŒì˜ ì¡°ìƒ ì•„ë¸Œë¼í•¨ì€ í•˜ë‚˜ë‹˜ì˜ ë§ì”€ì„ 좇아 믿ìŒê³¼ 순종과 í–‰í•¨ì˜ ì˜ë¥¼ ë³€í•¨ì—†ì´ í–‰í–ˆìŠµë‹ˆë‹¤. 마지막 관문ì´ì—ˆë˜ ë…ìž ì´ì‚­ì„ 바치ë¼ëŠ” 시험ì—ì„œë„ ì£½ì€ ìž ê°€ìš´ë°ì„œ 다시 살리시는 í•˜ë‚˜ë‹˜ì„ ë¯¿ì—ˆê¸°ì— í•˜ë‚˜ë‹˜ì˜ ë§ì”€ì— 온전히 순종하여 ë…ìž ì´ì‚­ì„ 드렸습니다.

ì´ì²˜ëŸ¼ í•˜ë‚˜ë‹˜ì„ ì „í­ì ìœ¼ë¡œ 신뢰하고 ìˆœì¢…í–ˆê¸°ì— í•˜ë‚˜ë‹˜ê»˜ë¡œë¶€í„° ì˜ë¡­ë‹¤ ì¸ì •í•¨ì„ 받았고, ì„  ìžì²´ì´ì‹  í•˜ë‚˜ë‹˜ì˜ ë²—ì´ë¼ëŠ” ì¹­í•¨ì„ ë°›ì„ ë§Œí¼ ì˜¨ì „í•œ ì„ ì„ ì¸ì •ë°›ì€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아브ë¼í•¨ì„ 믿ìŒì˜ ì¡°ìƒìœ¼ë¡œ 세워 주셨고, ê·¸ì˜ í–‰í•¨ì€ ì˜¤ëŠ˜ë‚  믿는 우리 모ë‘ì—게 빛으로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3. 빛과 반대ë˜ëŠ” ì–´ë‘ì›€ì— ì†í•œ 것들

ì´ì™€ ê°™ì´ ë¹›ì— ì†í•œ ê²ƒë“¤ì´ ìžˆëŠ” 반면, 빛과 반대ë˜ëŠ” ì–´ë‘ì›€ì— ì†í•œ ê²ƒë“¤ë„ ìžˆìŠµë‹ˆë‹¤. ì–´ë‘ì›€ì€ í•œ 마디로 ì£„ì— ì†í•œ 모든 ê²ƒì´ í•´ë‹¹ë©ë‹ˆë‹¤. 곧 ìœ¡ì²´ì˜ ì¼ê³¼ ìœ¡ì‹ ì˜ ì¼, 그리고 ìžì‹ ì´ ë³´ê¸°ì— ì˜ë¡œ 여겨지나 하나님 ë³´ì‹œê¸°ì— ì•…ì¸ ê²ƒë“¤ì´ì§€ìš”.

예를 들어 불ì˜, 추악, íƒìš•, ì•…ì˜, 시기, ì‚´ì¸, ë¶„ìŸ ë“±ì˜ ìœ¡ì‹ ì˜ ì¼ê³¼ ìŒí–‰, ë”러운 것, 호색, ìš°ìƒ ìˆ­ë°°, 술수, ì›ìˆ˜ 맺는 것 등과 ê°™ì€ ìœ¡ì²´ì˜ ì¼ë“¤ì€ 듣기만 í•´ë„ ì–´ë‘ì›€ì´ ëŠê»´ì§‘니다. 반면 ìžê¸° 보기ì—는 ì˜ë¡œ 여겨지나 하나님 ë³´ì‹œê¸°ì— ì•…ì— í•´ë‹¹í•˜ëŠ” ê²ƒì€ ì–´ë‘움ì´ë¼ê³  ëŠë¼ì§€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빛으로 비추면 반드시 ì–´ë‘ì›€ì€ ë“œëŸ¬ë‚˜ê²Œ ë˜ì–´ 있습니다.

ì„±ê²½ì„ ë³´ë©´, 예수님께서 때가 ë˜ì–´ ì˜ˆë£¨ì‚´ë ˜ì— ì˜¬ë¼ê°€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ì—게 ë§Žì€ ê³ ë‚œì„ ë°›ê³  죽임당할 ê²ƒì„ ë§ì”€í•˜ì…¨ìŠµë‹ˆë‹¤. ì´ë•Œ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ì´ ì¼ì´ ê²°ì½” 주ì—게 미치지 아니하리ì´ë‹¤"ë©°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ë‚´ 뒤로 물러가ë¼" 하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셨지요(마 16:21~23).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ì˜ˆë£¨ì‚´ë ˜ì— ì˜¬ë¼ê°€ëŠ” ê²ƒì„ ë§Œë¥˜í•˜ëŠ” ê²ƒì´ ìŠ¤ìŠ¹ì„ ìœ„í•˜ëŠ” ì¼ì´ë¼ ìƒê°í–ˆì§€ë§Œ,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ì‚¬ëžŒì˜ ì¼ì„ ìƒê°í•˜ëŠ” ì–´ë‘움ì´ì—ˆë˜ 것입니다. 그래서 ìš”í•œë³µìŒ 12장 46ì ˆì— ì˜ˆìˆ˜ë‹˜ê»˜ì„œ "나는 빛으로 세ìƒì—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ìžë¡œ ì–´ë‘ì›€ì— ê±°í•˜ì§€ 않게 하려 함ì´ë¡œë¼" ë§ì”€í–ˆìŠµë‹ˆë‹¤.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ì˜ì ì¸ 사랑과 팔복, 그리고 ì„±ë ¹ì˜ ì—´ë§¤ ë“±ì˜ ì§„ë¦¬ì˜ ë§ì”€ì„ 따르는 ì‚¬ëžŒì€ ë” ì´ìƒ ì–´ë‘ì›€ì— ê±°í•˜ì§€ ì•Šê³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4. 빛으로 나오지 못하는 ì´ìœ 

먼저, ì–´ë‘ì›€ì´ ì¢‹ê³  ë¹›ì´ ì‹«ê¸° 때문입니다(ìš”3:19~20). 세ìƒì˜ 쾌ë½ê³¼ 물질, ìžê¸° 유ìµì„ 좇아 사는 ê²ƒì´ ë” ì¢‹ê¸° ë•Œë¬¸ì— ì§„ë¦¬ì™€ ì„ ì„ ì¢‡ìœ¼ë¼ëŠ” ë¹›ì˜ ë§ì”€ì„ 싫어하는 것입니다. ë˜í•œ ìžê¸° ìƒê°ì— 가려 오해ë˜ê¸°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착하게 ì‚´ë©´ ë˜ì§€, 왜 ê¼­ êµíšŒì— 나가야 구ì›ë°›ëŠëƒ"는 것ì´ì§€ìš”. ì´ë“¤ì€ ì‹ ì€ ì¸ì •í•˜ì§€ë§Œ '왜 ìžì‹ ì´ 죄ì¸ì´ë©°, 주를 ì˜ì ‘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ë•Œë¬¸ì— êµíšŒì— 안 나오는 것입니다.

다ìŒìœ¼ë¡œ, 믿는 사람들ì—게 실족당한 경우입니다. 간혹 êµíšŒì— 다니는 ì‚¬ëžŒë“¤ì´ ê±°ì§“ë˜ê³  ê°€ì‹ì ì´ê¸° ë•Œë¬¸ì— êµíšŒì— 안 나간다고 ë§í•˜ëŠ” ì‚¬ëžŒë“¤ì´ ìžˆìŠµë‹ˆë‹¤. 그러나 êµíšŒì— 다닌다고 í•´ì„œ 다 ì£¼ë‹˜ì„ ë¯¿ëŠ” ê²ƒì´ ì•„ë‹™ë‹ˆë‹¤.

ë§ˆíƒœë³µìŒ 7장 21ì ˆì— "나ë”러 주여 주여 하는 ìžë§ˆë‹¤ ì²œêµ­ì— ë‹¤ 들어갈 ê²ƒì´ ì•„ë‹ˆìš” 다만 í•˜ëŠ˜ì— ê³„ì‹  ë‚´ ì•„ë²„ì§€ì˜ ëœ»ëŒ€ë¡œ 행하는 ìžë¼ì•¼ 들어가리ë¼" 했습니다. í•˜ë‚˜ë‹˜ì˜ ë§ì”€ì„ 듣고 지켜 행하는 ì‚¬ëžŒë§Œì´ ì°¸ 믿ìŒì„ 소유한 사람입니다. 입술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ì„¸ìƒ ì‚¬ëžŒë“¤ê³¼ 다를 ë°” ì—†ì´ í–‰í•œë‹¤ë©´ ì´ëŠ” 하나님과 ìƒê´€ë„ 없고 구ì›ë°›ì„ ìˆ˜ë„ ì—†ìŠµë‹ˆë‹¤.

ë§Œì¼ ì´ëŸ° ì‚¬ëžŒë“¤ì„ ë³´ê³  ë§ˆìŒ ë¬¸ì„ ë‹«ì•„ 구ì›ë°›ì§€ 못하고 ì˜ìƒì„ 얻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ì„ì€ ì¼ì¸ì§€ìš”. 믿ìŒì˜ ë³¸ì´ ë˜ëŠ” ë¹›ì˜ ì‚¬ëžŒë“¤ì„ ë³´ê³  하나님 ì•žì— ë‚˜ì˜¬ 수 있는 지혜로운 마ìŒì„ 소유하시기 ë°”ëžë‹ˆë‹¤.


5. ë¹› ê°€ìš´ë° ê±°í•˜ëŠ” 사람ì—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무엇ì´ë“ ì§€ 기ë„하고 구하는 ê²ƒì€ ë°›ì€ ì¤„ë¡œ ë¯¿ìœ¼ë¼ ê·¸ë¦¬í•˜ë©´ 너í¬ì—게 그대로 ë˜ë¦¬ë¼" (막 11:24) 약ì†í•˜ì…¨ê³ , ë˜í•œ "ë„ˆí¬ ë¯¿ìŒëŒ€ë¡œ ë˜ë¼"ê³  ë§ì”€í•˜ì…¨ìŠµë‹ˆë‹¤(마 9:29).

ë¹›ì´ì‹  하나님께 나와 ì‹ ì•™ìƒí™œì„ 열심히 한다고 í•˜ë©´ì„œë„ ì—¬ì „ížˆ ì§ˆë³‘ì´ ë– ë‚˜ì§€ ì•Šê³  ì‚¬ì—…í„°ì˜ ë¬¸ì œ, ê°€ì •ì˜ ë¬¸ì œ 등으로 고통 받는 ì‚¬ëžŒë“¤ì´ ìžˆëŠ”ë°, ê·¸ ì´ìœ ëŠ” 무엇ì¼ê¹Œìš”? 본ì¸ì€ ë¹› ê°€ìš´ë° ì‚°ë‹¤ê³  하지만 실ìƒì€ ë¹› ê°€ìš´ë° ì‚´ì§€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빛으로 나오는 것과 ë¹›ì— ê±°í•˜ëŠ” 것과는 ì°¨ì´ê°€ 있습니다. ì¼ë‹¨ 빛으로 나왔다 í•´ë„ ëª¨ë‘ ë¹›ì— ê±°í•˜ëŠ” ê²ƒì´ ì•„ë‹ˆì§€ìš”. 다시 ì–´ë‘움으로 ë˜ëŒì•„간다면 ì´ëŠ” ê²°ì½” ë¹› ê°€ìš´ë° ê±°í•˜ëŠ” 것ì´ë¼ í•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ì‚¬ëžŒì„ ë¯¸ì›Œí•˜ë˜ ì‚¬ëžŒì´ ì€í˜œë¥¼ 받고 마ìŒì„ ìž ì‹œ ëŒì´ì¼°ë‹¤ê°€ ì‹œê°„ì´ í˜ëŸ¬ 예전처럼 다시 미워한다면 아무 ì†Œìš©ì´ ì—†ëŠ” 것입니다. ë˜í•œ ë¹›ì— ê±°í•œë‹¤ í•´ë„ ì˜¨ì „í•œ ë¹›ì˜ ì°¨ì›ì— ì´ë¥¼ 때까지 ëŠìž„ì—†ì´ ë¹›ìœ¼ë¡œ ê°€ê¹Œì´ ë‚˜ì˜¤ëŠ” ê³¼ì •ì´ í•„ìš”í•œ 것입니다. ê²°êµ­ 온전히 ë¹›ì— ê±°í•  ë•Œ 요한ì¼ì„œ 3장 21~22ì ˆ ë§ì”€ëŒ€ë¡œ 하나님 ì•žì—ì„œ ë‹´ëŒ€í•¨ì„ ì–»ê³  무엇ì´ë“ ì§€ 구하는 바를 받는 ì¶•ë³µì˜ ë§ì”€ì´ 임하게 ë©ë‹ˆë‹¤.

사랑하는 ì„±ë„ ì—¬ëŸ¬ë¶„,
ë¹›ì´ì‹  í•˜ë‚˜ë‹˜ì„ ë§Œë‚˜ ë” ì´ìƒ ì–´ë‘움 ê°€ìš´ë° ê±°í•˜ì§€ ì•Šê³  ì˜¤ì§ ë¹› ê°€ìš´ë° ê±°í•˜ë©´ 모든 ê²ƒì´ í˜•í†µí•˜ê²Œ 풀리며 ê°ì¢… ì¸ìƒì˜ ë¬¸ì œë“¤ì„ ì‹œì›í•˜ê²Œ í•´ê²° ë°›ì„ ìˆ˜ 있습니다.
ë¹›ì´ì‹  í•˜ë‚˜ë‹˜ì˜ ìžë…€ë“¤ì²˜ëŸ¼ 행할 ë¿ ì•„ë‹ˆë¼ ì˜¨ì „ížˆ ë¹› ê°€ìš´ë° ë‚˜ì™€ ë¹›ì˜ ì—´ë§¤ë¥¼ 맺으며 마ìŒê» 하나님께 ì˜ê´‘ ëŒë¦¬ì‹œê¸°ë¥¼ ì£¼ë‹˜ì˜ ì´ë¦„으로 축ì›í•©ë‹ˆë‹¤.




 
±âȹ.ƯÁý
[특집] 사역 - 하나님과 ë™í–‰í•œ 믿ìŒì˜ 역사 ì´ìž¬ë¡ ëª©ì‚¬ì˜ ì‚¶ê³¼ ì‹ 
 

 

 

 
°¡Àå ¸¹ÀÌ º» ±â»ç
   

 
Ãßõ °Ë»ö¾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