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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4일 목요일 오전 9:4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4 -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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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베드로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 마태복음 18:21~22 -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4 -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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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0일 일요일


"그때에 베드로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 마태복음 18:21~22 -


일반적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해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고 해도 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가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해를 가한 상대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서 "한 번만 더 잘못하면 그때는 가만 두지 않겠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보통 사람들이 베푸는 관용에는 그 한계가 있어 상대의 잘못을 한 번, 두 번, 혹은 세 번 허용하기도 하지만 그 이상 용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하면 악한 사람이라도 선으로 이해할 수 있고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기 위해, 하나님과 주님의 끝없는 사랑과 용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여쭙니다. 베드로는 일곱 번의 용서라면 굉장한 관용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490번만 용서해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7은 완전수이므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의 용서란 완전한 용서 곧 무한대의 용서를 의미하지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490번만 용서해 주셨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에서 '법 없이도 산다'는 말을 듣는 사람일지라도 막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비진리투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악뿐 아니라 악들이 마음속에 있는 자체를 악하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마 5:28 ; 요일 3:15).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에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므로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소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비록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간다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2. 악인이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창세기 18~19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심히 중하여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냥 멸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살려 줄 수 있는 조그마한 근거라도 찾고자 사자들을 보내어 살피게 하시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고자 여러 차례 간청을 합니다(창 18:22~32). 결국 의인 오십 명에서부터 시작해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확답을 받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돔 성에는 단 열 명의 의인이 없어 멸망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18장 7~8절에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라고 했습니다.
만일 소돔 사람들이 그 악에서 돌이켰다면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로 멸하리라는 뜻을 돌이키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용서에 용서를 거듭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악의 한계점에 달한 상태였기에 멸하실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니느웨 백성은 달랐습니다. 죄악으로 관영해 심판의 경지에 이른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고 경고하시자 왕을 비롯해 온 백성과 짐승들까지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이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비록 악인이라 해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며 살리기를 원하실 뿐 아니라(겔 33:14~15), 회개해 온전히 돌이키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그 죄과를 기억지도 않으시는(시 103:12)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3.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신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요 10:30)께서는 사람들을 용서하시되 완전한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조롱하며 죽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을지라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며 사랑의 중보기도를 올리셨습니다(눅 23:34).
여기서 '저희'란, 당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며 희롱하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신 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어둠 가운데 행할 온 인류를 지칭하는 말이지요.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빛과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 처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진리를 알지 못해 죄를 범한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사랑의 간구를 올리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용서와 사랑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예수님처럼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며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을 봅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는 애매히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자신을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행 7:60).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아 빛 가운데 행하려고 하면 원수 마귀 사단은 어둠 가운데 행하는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방해하며 핍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대신 용서를 구하는 사랑의 간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 주님의 마음을 닮으면 설령 자신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사람이라 해도 미워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기도를 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는 반면, 용서받지 못하는 죄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하는 죄(마 12:31~32), 성령 모독(눅 12:10) 그리고 성령에 참예한 후 타락해 현저히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히 6:4~6),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짓는 경우입니다(히 10:26~27).
우리는 이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되 마음만큼은 어떠한 사람이라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게 선을 베풀고 잘해 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나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사람도 사랑으로 용서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주님께서 영혼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모든 사람을 향해 참다운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럴 때에 상대도 변화되며 원수까지라도 화목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의 첫 관문인 오래 참음의 기초 위에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 용서하는 사랑을 이루어 범사에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불화가 있는 곳에 평화가, 아픔이 있는 곳에 치유가,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넘쳐나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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