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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9일 월요일 오후 9:25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6 - 사랑은 두려움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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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18~19)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5 -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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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4일 일요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 결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죄를 용서받음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지요.
예수님처럼 죄인들의 허다한 허물까지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한다면 상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며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준다'는 말씀의 의미

흔히 '허물'은 그릇된 실수나 잘못을 의미하며, 영적으로는 마음속에 있는 죄의 성질이 행함으로 드러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할 마음이 있다고 해서 이를 허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도둑질을 했을 때에 허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허물을 덮어 주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하지요.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준다'는 것은 단순히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오래 참음으로 상대가 잘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며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설령 자신에게는 손해가 될지라도 그것을 덮어 줄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 역시 오래 참음이 기초가 되어서 상대가 온전해질 것을 바라보고 다가오는 모든 고통을 견디며 참아 주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상대의 흠과 티를 드러내거나 없는 허물을 만들어 전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그것을 덮어 줄까, 그가 더 발전할 수 있을까, 변화될 수 있을까' 하며 상대가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 하지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을 버리고 상대의 허물까지도 덮어 주는 선한 마음이 되어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2.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을 이루려면

1) 상대의 허물을 보았을 때 가만히 끊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성경상의 인물로는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구약의 율법대로라면 그녀를 돌로 쳐 죽이도록 내놓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가만히 끊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됐음을 천사를 통해 알려 주십니다. 자신이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육의 아버지로 선택받는 축복의 사람이 된 것을 알고 큰 기쁨 중에 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우 상대에게 상황 설명을 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배신감을 느끼며 미워합니다. 그러나 먼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조금만 그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하면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전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은 이러이러한 잘못이 있는데 나는 다 이해할 수 있어"라고 하며, 마치 자신은 다 이해하고 있으며 그 사람을 감싸 주는 너그러운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오히려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골로새서 3장 13~14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말씀했습니다.
믿음의 형제 사이에는 다투어 허물을 드러냄으로 불의한 자가 되느니 차라리 누명을 쓰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당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감사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심으로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상대의 허물을 보았을 때 그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허물을 덮어 준다는 말씀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는 예가 나옵니다. 하루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둘째 아들 함은 다른 두 형제에게 가서 알리지요. 그런데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해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장막 안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돌이켜 하체를 보지 않았지요.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으려 함은 물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그 허물을 덮어 준 것입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 않으며, 설령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마치 그것이 자신의 허물인 것처럼 민망히 여깁니다. 예를 들어,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라면 남편이 잘못되기를 바랄 리 없고 남편의 흠과 티가 보인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어 감옥에 갔다 할지라도 사랑하기에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지요.
흠과 점과 티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사람들의 허물을 지적하고 정죄하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용서를 베풀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으며 영혼들의 아픈 곳을 싸매 주셨습니다. 죄인의 허물을 보면 덮어 주시며 돌이켜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셨지요.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허물을 덮어 주라 하니 무조건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옳을까요? 허물은 곧 죄요,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므로 상대가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도 덮어 놓고 모른 체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의 허물의 경중에 따라 때로는 사랑의 권면이나 훈계, 책망 등 상대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바른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약 5:19~20).

3) 상대가 진리로 변화되도록 이끌어 줘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 주고 이해해 주는 차원을 넘어서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심으로 생명을 낳으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썩어질 육의 생명이 아니라 영생으로 인도받을 수 있게 하는 생명, 영으로 살리는 생명을 말합니다. 어둠에 있는 영혼들에게 찬란한 빛을 비춰 주는 생명이지요.
예를 들어, 허물 많던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기까지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이끄셨습니까?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 앞으로 될 일들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을 때 베드로는 주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버리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요 13:33, 36, 37 ; 눅 22:31~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38) 말씀하셨지요. 결국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곧이어 닭이 울고 주께서 베드로를 보시니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지요(눅 22:54~62).
그런데 만일 베드로가 여기서 주저앉고 말았다면 권능의 사도로서의 베드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때 예수님께서 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떠올렸습니다.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던 말씀 등이었지요.
예수님께서 자신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해 주셨고, 자신이 주를 부인할 것을 아시면서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당부의 말씀만 해 주신 일들에 대해 떠올렸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베드로는 지난 일들을 생각하며 감당치 못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 또다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속마음 곧 예수님을 부인할 마음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더한 죄 가운데로 빠져들 수 있었던 상황에서 구해 내신 것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의 극치를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으로서, 제자 베드로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이러한 사랑으로 이끄셨습니다. 이미 지은 죄를 사해 줌은 물론, 더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놀라운 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함으로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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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확실히 증거하는 말씀과 표적, 사모합니다!" 베네수엘라 5차
 
기획.특집
[인터뷰] 믿음 위에 굳건히 서서 주의 길을 가는 만민,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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