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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8일 토요일 오후 6:3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9 - 눈에 보이는 표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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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사도행전 3:22)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6 - 사랑은 두려움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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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8일 일요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18~19)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저주를 받고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의 고난에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버리시고 이 땅에 사람의 형상을 입고 오셨지요.
더구나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서 우리를 대신해 헐벗음과 굶주림을 겪으시며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고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마침내는 피조물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물과 피를 다 쏟고 죽으셔야 했지요.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께서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수없이 고백했어도 막상 엄청난 고난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게 된다면 그것은 아직 마음에 두려움이 남아 있다는 증거요,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해도 결코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두려움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두려움이 있는 이유

1) 두려움은 범죄함으로 인해 옵니다
창세기를 보면 인류 역사에 어떻게 죄가 들어왔는지 그 과정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서 따로 창설해 주신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각종 나무 실과를 먹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아무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간교한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는 그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되었지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 죄가 들어오자 아담은 죄로 인한 수치감으로 인해 자기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며 나뭇잎으로 가렸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직 죄에 물들지 않았기에 발가벗겨 놓아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또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수치감보다는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담도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죄가 들어오니 이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아담을 여호와 하나님이 찾으시자 그는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죄를 짓고 나니 두려움이 임한 것입니다. 결국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하며 고달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죄를 지은 후 두려움이 임한 예로는 가인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을 좇아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만을 기뻐 받으시자 가인은 시기와 미움으로 인해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맙니다. 이로 인해 가인은 땅에서 피해 유리하는 자가 되고 말았지요. 이때 두려워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 4:13~14) 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인에게는 죄의 삯이 사망이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므로 두려움이 찾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만큼 두려움이 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올 때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베풀어지는 열 재앙을 보았습니다. 또 지팡이를 내미니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는 역사도 체험했지요. 험난한 광야 길에서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받았으며 메추라기와 만나로 먹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시자 두려워 떨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를 못합니다(출 20장). 그리고 모세를 향해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말하지요. 그런데 이런 백성과는 달리 모세는 두려움에 떠는 백성을 진정시키며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까이 나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와의 사이에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지 못한 반면 모세는 하나님을 정녕 마음에서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하고,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모세는 범죄한 백성이 진멸당할 위기에 놓이자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만큼 하나님 마음을 닮아 사랑을 이룬 모세였기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룰 수 있었고,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른 선지자와는 이상과 꿈 가운데 만나 주셨으나 모세와는 친히 대면해 말씀해 주셨지요. 모세가 이 지상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고 온 집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민 12장).

3)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그만큼 알지 못한다는 뜻인데, 이러한 예로는 욥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욥기 1장 1절에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늘 성결케 했으며, 잔칫날이 지나면 혹시 자녀들이 잔치를 즐기는 중에 죄를 범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했을까 하여 자녀들의 수대로 번제를 드릴 정도로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그러나 욥의 행함은 하나님을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재앙을 만난 후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 3:25)라고 고백하지요. 곧 축복을 넘치게 받던 중에도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혹 내게 재앙을 주시지는 않을까' 염려하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 하면서 하나님을 오해해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이 아무에게나 재앙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욥의 말이 옳다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여기며 평강 가운데 그분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면 재앙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처럼 욥은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해 지식적으로 알기는 했지만 직접 체험한 바가 없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이나 사랑을 헤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오해하며 두려워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욥을 참된 사랑의 차원으로 이끄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연단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체험하게 되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라고 고백하지요. 이후 욥은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돼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2. 두려움이 없는 온전한 사랑을 이루려면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요, 이것은 성경 66권 말씀을 지켜 행하고 사랑으로 완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가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 주고 아무리 어렵고 힘든 것이라 해도 기쁜 마음으로 해 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그 자체가 행복하고 기쁩니다.
비록 모든 말씀을 다 지키지 못한다 할지라도 깨닫는 만큼 행해 나가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우리 마음에 감동함과 확신을 주시지요. 곧 진정 마음으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고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게 하심으로 진리대로 행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하나하나 지켜 나가는 만큼 두려움이 사라지고 진리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됩니다. 결국은 생명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온전한 사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 진리 안에 거할 때 담대히 구하게 되고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지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두려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실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돌아갈 본향인 아름다운 천국이 있으니 그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주님과 사랑을 나눌 것을 바라본다면 현재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를 맞이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며 인도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그 날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되 두려움이 없는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가장 영광스러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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