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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7일 일요일 오후 3:37
 
 

'가나안 정복사' 시리즈 11 - 네 것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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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여호수아 17:15~18) ...
       
 
  
 

'가나안 정복사' 시리즈 7 -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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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일 일요일


범람하던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의 다음 목표물은 여리고성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길목이라 할 수 있는 여리고는 큰 성인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할 듯한데, 사람들이 눈에 띄기는커녕 이상하리만치 적막감이 감돌았습니다.
여리고 성내는 이제 곧 벌어질 이스라엘과의 피할 수 없는 전쟁으로 온통 촉각을 곤두세운 채 두려움 속에 숨죽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한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정복했을까요?


1. 오직 순종함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

여리고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 있고, 성벽 위로 마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견고한 데다가 무장한 군사들이 방어하고 있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힘만으로는 도무지 공략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할 것을 말씀하시면서(수 6:2) 다소 이해하기 힘든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엿새 동안 성 주위를 매일 한 바퀴씩 돌되 제 칠 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는 것입니다.
이때 맨 앞에는 무장한 자들이 선 뒤 일곱 제사장이 양각 나팔을 잡고, 그 뒤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사람들이 따르며 그 뒤로 백성들이 행군하는 것입니다. 제 칠 일에는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고 난 후,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불어서 그 소리가 들릴 때에 온 백성이 큰 소리로 외치면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는 것이었지요.
여기서 거듭 강조되는 '7'은 완전수로서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일곱째 날에 제사장들이 길게 나팔을 불어서 그 소리가 들릴 때에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치면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고 알려 주셨는데, 이는 바로 영적으로 큰 소리로 부르짖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렘 33:3).
견고한 여리고성이 백성들의 외침으로 무너진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는 전술이지만, 믿음의 훈련을 받은 출애굽 2세대들은 어떠한 부정적인 고백이나 불평도 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여 행했습니다.
요단강을 등지고 배수진을 친 채 양각 나팔을 들고 너무도 당당하게 성 주변을 도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여리고성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어 감히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시니 그들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망연해하며 초조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곱째 날이 되니 여느 때와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성을 돌기 시작하는데 무려 일곱 바퀴를 도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의 나팔소리가 길게 울리는가 싶더니 여호수아가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수 6:16) 하자 백성들이 크게 소리를 질러 외치는 것이었지요. 그 순간 놀랍게도 튼튼한 이중 성벽이 일시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난공불락의 여리고성과 같은 문제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지만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문제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지요. 결국 고통 가운데 낙심하거나 주저앉아 버리고 맙니다.
반면에 믿음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한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분별하여 담대히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멈추시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듯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세상 방법이나 지식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존하고 믿음으로 행군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앞서 싸워 주시고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시 20:7).


2. 여리고성과 그 성의 모든 것을 바치게 하신 하나님

여리고성을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은 성에서 얻은 노획물을 한 가지도 사사로이 취하지 않고 불사르거나 성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얻은 것이니 먼저 하나님께 돌렸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수입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또한 여리고의 사람과 짐승은 다 죽였는데, 살아남은 사람은 단지 두 정탐꾼을 도와준 라합과 그녀의 가족뿐이었습니다. 혹자는 모든 것을 진멸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하는데, 이스라엘이 이렇게 행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리고성의 사람과 짐승을 죽이는 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의 거민들은 극심한 죄악 가운데 타락한 삶을 살고 있었으며, 특히 많은 우상을 음란하게 섬기고 있었지요.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과 함께 거한다면 차츰 죄악에 물들게 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사람들을 진멸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신 7:16). 이는 죄악으로 관영한 가나안 거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이기도 했지요.
사람들의 죄악이 어느 한계에 달하면 하나님께서 공의 가운데 그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범죄를 그냥 방치해 두면 마치 전염병과 같이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하나님께서 무조건 죄악이 관영하기를 기다렸다가 진멸하신 것은 아닙니다. 끝까지 기회를 주시지요(시 103:8).
하지만 여리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많은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진멸당하고 만 것입니다.


3. 기생 라합과 그의 가족을 살린 여호수아

라합은 이스라엘을 통해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들을 듣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이 일로 정탐꾼들은 여리고를 점령할 때 라합과 그의 가족은 살려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여기에는 단서가 있었습니다.
라합이 정탐꾼들을 창문으로 탈출시킬 때에 사용했던 붉은 줄을 창문에 매어 두고 라합과 그의 가족이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혼란스러운 전쟁 중에 지킴 받기 위한 조건이었습니다.
이 조건을 보면 출애굽 당시 장자의 재앙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하룻밤 사이에 애굽의 초태생, 곧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는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이때도 단서가 있었는데 바로 집 문의 좌우 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발라야 하며, 집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재앙에서 지킴 받는 원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죄악이 관영하여 날이 갈수록 각종 재앙들이 범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들은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단, 그 보혈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어야 하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고 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라합의 가족이 창문에 붉은 줄로 표시한 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죄악 된 세상과 짝하지 않아야 지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4절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한 대로 계명을 지킬 때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항상 지킴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믿는다 하면서도 각종 재앙과 시험 환난으로 고통 받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출 15:26).
비록 기생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라합과 같이 마음이 선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심판 가운데서도 구별하여 지키시는 것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라합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의 부모와 형제는 물론 친족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지요.
또한 라합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관영한 여리고성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선한 사람은 구원에 이르도록 어찌하든지 인도해 주십니다.
여리고성의 정복과 관련해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여호수아가 다시는 여리고가 건축되지 못할 것을 맹세한 대로(수 6:26), 약 500년 후 아합 왕 시대에 그대로 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왕상 16:34).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 잊어버릴 수 있고 기억이 희미해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한 번 하신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또한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전쟁뿐 아니라 모든 일의 결과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깨달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늘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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