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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오후 9:37
 
 

보배 중의 보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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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
       
 
  
 

보배 중의 보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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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1일 일요일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위력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며 천국과 지옥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응답과 축복, 치료를 받으니 보배 중의 보배는 믿음이지요.
그런데 이때의 믿음은 영적인 믿음이라야 합니다. 과연 영적인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1.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믿음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믿음으로, 사람이 자기 의지로 가질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귀신 들린 아들을 고침 받기 원하는 한 아버지의 고백이 나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내 아들을 치료해 달라'는 아버지의 말에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시지요. 그러자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합니다.
여기에서 '내가 믿나이다' 할 때의 믿음과 '나의 믿음 없는 것'이라고 할 때의 믿음은 다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들으며 예수님이시라면 능히 자신의 아들을 고쳐 주시리라는 지식적인 믿음이 생겼지요. 그래서 '믿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육적인 믿음, 보고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아직 마음에 온전히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없으므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했습니다. 겨자씨라고 하면 씨 중에서도 아주 작은 씨입니다. 펜으로 점을 콕 찍은 것만큼 작지요.
이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고, 못할 것이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대로 빛 가운데 살므로 그 뜻에 맞게 구하고 공의에 합당한 그릇을 준비할 때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 가운데 살면서 "주여 믿습니다" 한다면 이는 거짓말이지요(요일 1:6). 정녕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면 그분의 계명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죽은 믿음은 어떤 역사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대로 살면서 기도해야 영적인 믿음이 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뜻에 맞는 선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욕심이나 악한 마음으로 구할 때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잘되기 위해서 저 사람은 잘못되게 해 달라는 식의 악한 기도는 응답받을 믿음을 가질 수가 없지요. 성실하지도 않고 정도를 걷지도 않으면서 욕심으로 물질 축복을 구할 때도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소원이나 물질의 축복을 구해도, 정도를 걸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한다면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때는 공의에 합당한 그릇을 준비하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주관해 가시지요.
경험을 쌓게 하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며, 내가 기술이 부족하면 습득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축복받을 그릇이 되기까지 연단하신 후에 때가 되면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순종할 수 없는 것도 순종하는 믿음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내 생각에 맞지 않는 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 뜻이라면 순종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보다 하나님께서 지혜로우심을 믿고, 내 힘보다 하나님 능력이 크심을 믿기에 그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다면 결코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철저히 믿어드렸고 순종했습니다. 약속의 씨인 이삭을 바치라 하심에도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었고, 만약 아들이 죽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그 아들을 다시 살리실 수 있음을 믿었지요.
아브라함의 온전한 순종을 심히 기뻐하시고 감동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 불러 주셨고 그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도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도 오직 순종과 신뢰의 역사였습니다. 가라 하시면 갔고, 서라 하시면 섰습니다.
구제를 주관하시면 구제했고, 선교를 주관하시면 선교했습니다. 재정이 아무리 빠듯해도 주관하시는 대로 주의 종을 양성했지요. 외부에서 핍박이 올 줄 알면서도 영의 세계를 선포했습니다.
'아버지, 저도 순종하고 싶지만 재정이 없는데 어떻게 구제하나요? 어떻게 선교비를 지급하고 성전을 확장하나요? 방송 전문가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방송국을 세울까요? 지금 당장은 좀 어려우니 앞으로 재정이 들어오면 꼭 하겠습니다. 아버지, 그런 영적인 말씀을 선포하면 분명히 핍박이 올 텐데요? 이단이란 말도 들을 텐데요? 아직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 시험에 들 텐데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뜻이라면 즉시, 무조건 순종했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처럼 온전히 순종하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3. 변개함이 없는 믿음

마가복음 11장 24절에 "…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했고, 야고보서 1장 6~7절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정녕 믿는다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이 영적인 믿음이어야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식적인 믿음, 들어서 아는, 또한 눈으로 보아서 믿는 이런 육적인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의심이 틈타기도 하고, 온전히 믿지 못하니까 온전한 순종이 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영적인 믿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정말 이뤄질까? 이렇게 오래 지나도 응답이 없으니 안 되나 보다. 축복을 구했는데 오히려 연단이 오네. 성령의 주관이 아니라 내 생각이었나' 이렇게 요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의 아들 요셉은 어린 시절에 신기한 꿈을 꾸었습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과 형들이 묶은 곡식 단이 자기가 묶은 곡식 단에 절을 하는 꿈이었지요. 요셉은 이 꿈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존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축복의 꿈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후로 요셉에게 다가온 현실은 영광이 아니라 기가 막힌 연단이었습니다. 형들의 시기, 질투 때문에 죽을 뻔하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져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지요. 주인으로 섬기던 애굽의 시위대장에게 인정받아 상황이 좀 나아지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중죄인의 누명을 쓰고 깊은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이런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요셉은 항상 하나님을 믿어드렸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을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감옥에서 건져 애굽의 왕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열일곱 살에 종으로 팔려갔던 변방의 한 소년이 기구한 13년의 세월을 보낸 끝에 강대국 애굽의 2인자가 되었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성취되었습니다.
요셉에게 영적인 믿음이 없었다면 이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 뜻을 궁구하며 성실히 주어진 일을 행했지요. 사실, 요셉이 겪은 어려움은 요셉을 향한 하나님 뜻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요셉 한 사람만 축복하시려면 그런 고생을 피하게 하실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데 있었습니다. 이 큰 섭리를 이루려면 요셉이 강대국 애굽의 실권자가 되어야 했지요.
고난과 절망의 세월처럼 보였던 이 13년은 실제로는 애굽 총리가 되기 위한 하나님의 속성 훈련 과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연단을 거치면서 요셉은 크고 넓고 깨끗한 마음과 더욱더 겸비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와 사람이 원하는 응답의 때가 다를 수 있지요. 사람이 보기에는 지체된 것 같아도 하나님의 안목으로는 가장 정확한 때에 이루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변함없이 믿어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응답의 열매를 주시지요. 믿은 것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섭리, 일어나 빛을 발하는 제단, 열왕과 열방이 몰려와 구원받고 온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전 등 이를 이루고자 우리는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때로는 가시밭길을 걷는 듯했고 벼랑 끝에 선 것 같았으며, 사방이 우겨 싸인 것 같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있었습니다.
만일 만민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단순히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큰 성전 건물을 짓는 것에 불과했다면 우리는 벌써 모든 사명을 완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그 과정에서 맺히는 경작의 열매입니다. 마지막 때 대성전이 건축된다는 것은 참 자녀의 수가 넉넉히 채워졌다는 뜻이지요.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온 세계를 복음으로 덮어가는 세계 선교는 악에 깊이 물든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움직여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그런 권능이 온 세계에 펼쳐지는 것이지요. 이런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계획에 따라 요셉을 애굽 총리로 만드시듯 우리의 그릇을 만들어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5장 4절에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인내의 시간은 결국 공의에 따른 심음이 되어,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펼치기 위한 도약대를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 가운데 신속히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는 귀한 영광의 도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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