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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9일 수요일 오전 5:03
 
 

'십자가의 도' 시리즈 18 - 믿는다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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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한일서 5:16~17) ...
       
 
  
 

'십자가의 도' 시리즈 9 -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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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9일 일요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누가복음 2:11~12)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독생자 예수님을 얼마든지 호화로운 장소에서 존귀하게 태어나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게 하신 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는 초라한 우리에서 태어나셨으나 영적으로는 지극히 영화롭게 태어나셨음을 알아야 합니다(눅 2:14).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함께하게 하시고 영광의 빛으로 두르셨을 뿐 아니라 이 땅의 선한 목자들과 동방 박사 등 예비한 사람들이 경배하도록 하셨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의 길이 열리고 무수한 영혼이 천국에 들어오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초라하게 구유에 누이시고 가난을 겪으셔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이유

누가복음 2장 1~7절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호적을 하러 갔다가 예수님을 낳은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인구 조사를 위해 호적 만들 것을 명했습니다. 로마 통치 아래 있던 모든 유대인 역시 자신의 고향, 혹은 본적지로 가서 호적을 만들어야 했지요. 다윗의 자손 요셉도 호적을 만들기 위해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갔는데, 마리아는 이미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상태로 해산할 날이 다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이 이동함으로 인해 여관에는 묵을 곳이 없었지요.
마리아는 결국 짐승의 우리에서 해산하게 되었고, 마땅히 뉠 만한 곳이 없어 아기를 강보에 싸서 짐승의 먹이를 담아두는 구유에 뉘었습니다. 이 땅에 온 인류의 구세주로서 오신 예수님께서 왜 이처럼 낮고 천한 곳에서 태어나신 것일까요?
전도서 3장 18절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해 보시니 짐승과 다름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짐승에 비유하니 이상히 여길 수 있지만 그 악함을 보면 짐승보다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자기 욕심을 채우고자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가 하면, 물질의 욕심 때문에 가족끼리 싸우고 고소하며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합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아담으로 인해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하나님의 선하신 형상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차츰 마음이 죄악으로 물들어가 세상 정욕과 자기 욕심에 따라 온갖 죄를 지으며 살아가게 되었지요. 이러한 사람은 혼과 육으로만 지은 짐승처럼 결코 하늘나라에 갈 수 없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거룩한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사람의 본분을 되찾아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해야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에서 벗어나 사람의 본분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악을 모양이라도 버려 나가는 것이고(잠 8:13)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말씀한 대로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 명령을 지키는 것이며 사람의 본분을 되찾는 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하신 것은 결코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여 "공부해라" 당부하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듯이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이 사람의 본분을 다해 축복된 삶을 영위하도록 알려 주시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섬세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고 참된 영의 양식이 되어 주시기 위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것입니다.


2.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한 길을 가신 이유

요한복음 3장 35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다' 했고, 골로새서 1장 16절에는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했습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굳이 가난한 길을 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한 대로 우리에게 부요의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땀 흘리지 않고 일하지 않아도 항상 풍요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 타락한 뒤로는 사람과 함께 만물도 저주받아 땀 흘려 경작해야 식물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요(창 3:17~19). 모든 사람이 가난을 겪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한 저주이기에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을 겪으심으로 우리로 부요케 하려 하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의 가난이 영적 가난을 의미한다고도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돼 나신 분이며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므로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물질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신앙이라고 말하고,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처럼 인식하기도 하는데 이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요케 하신다는 수많은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해 이삭, 야곱, 요셉, 다니엘 등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은 풍성하고 부요한 삶을 누렸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우리도 가난을 대속하신 주님의 은혜 속에서 부요함의 축복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 가운데 행하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 것처럼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가 믿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기를 원하시지요(막 11:24). 그러나 아무리 원해도 구하지 않으면 응답받을 수 없으며 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응답을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것은 하나님을 가볍고 소홀히 여기며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합니다.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 위해서는 영혼이 잘되어야 함을 알 수 있지요. 여기서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을 뜻합니다. 신명기 28장 2절에도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라 해도 축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씨를 심어야 합니다. 심지 않고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려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갈 6:7). 아무리 믿음이 큰 사람이라 해도 많이 심을 때 많이 거두며,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고후 9:6). 믿음으로 심을 때 하나님께서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곧 갑절 이상을 주시고 영혼이 잘된 만큼 30배, 60배, 혹은 100배로 갚아 주시지요.
여기서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둔다는 말은 단지 액수나 분량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어떤 중심으로 사랑과 믿음을 갖고 심었는지 그 중심의 향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구차한 중에도 자기 소유의 전부와 같은 두 렙돈을 드린 과부를 칭찬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린 중심의 향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물론 물질로 심었다 해서 물질로만 갚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물질로 주시지 않아도 영혼이 잘되게 하시는 축복이 참된 축복이지요. 이방인이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구제를 많이 했던 고넬료는 온 가족이 구원받는 은총을 받았으며, 열심히 선행과 구제를 쌓았던 도르가라는 여인은 죽었다가도 기도받고 살아나는 체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것은 짐승과 같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사신 것은 사람들의 가난을 대속하고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이지요.
그러므로 부요케 하시며 축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영육 간에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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