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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9일 수요일 오전 5:27
 
 

'십자가의 도' 시리즈 18 - 믿는다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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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한일서 5:16~17) ...
       
 
  
 

'십자가의 도' 시리즈 14 - 예수님의 가상칠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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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18일 일요일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3:34~43)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까지 그 모든 일을 종합적으로 일곱 마디 말씀에 담아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인간 구원의 길을 완성하는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과 같은 예수님의 가상칠언에는 어떠한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먼저 1, 2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제1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했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순종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신 것은 인류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했던 인류를 대신해 모든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로마 군병과 이스라엘 백성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마치 흉악한 죄인인 것처럼 멸시하고 조롱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운명하시는 순간까지도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하는 것이 죄인 줄도 모르니 긍휼히 여기고 용서해 줄 것을 간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저희'란, 단순히 당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희롱한 사람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어둠 가운데 있는 온 인류를 일컫지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원의 섭리를 알지 못해 십자가에 못 박은 그들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해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원수 마귀는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는데, 오늘날에도 어둠에 속한 사람들을 주관해 빛 가운데 행하려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창조주이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나이시니 그 능력을 힘입으면 당장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뜻 가운데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온갖 고난과 수치를 당하시면서도 오히려 그들을 대신해 용서를 빌며 사랑의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간구 때문에 오늘날 무수한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 십자가상의 첫 번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성도들의 마땅히 행할 바를 깨우쳐 주십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죄인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하신 예수님께서는 주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통해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지요. 또 우리가 애매히 핍박을 받을지라도 악으로 대항하거나 감정을 품지 말고 오직 선으로 대하기를 원하십니다(마 5:44~45).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주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제2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 위에 높이 세워진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두 강도도 하나는 우편, 하나는 좌편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눅 23:33).
이때 한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으나 다른 편 강도는 오히려 예수님을 힐난하는 강도를 꾸짖을 뿐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가 구원받아 낙원에 있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가상칠언 중 두 번째 말씀입니다.
이 안에는 많은 영적인 뜻이 담겨 있는데, 먼저는 천국의 처소 '낙원'에 대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천국은 요한복음 14장 2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한 대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넓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천국의 낙원에 갔다 왔다고 했으며,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는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천국이 하나의 처소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마 11:12 ; 고전 15:41). 사람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했느냐에 따라 천국의 처소와 영광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물론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이니 어느 곳이나 아름답고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하지만 각 처소마다 그 행복과 영광이 다릅니다. 특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 보좌가 있는 가장 영화로운 처소로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회개한 강도가 있을 낙원은 천국에서 가장 변두리 지역으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나 영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별로 거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회개한 강도가 낙원에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강도는 다만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 겨우 구원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말씀인 진리를 듣고 지켜 행하고자 죄를 버린 것도, 누구를 전도한 것도 아니며,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상급 없는 낙원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것은 강도가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 예수님께서 낙원에 계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천국의 주인으로서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에 거하시지만 천국 전체를 통치하시므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오늘'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 혹은 어느 특정한 날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한 강도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바로 그 순간부터는 그가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의미이지요. 따라서 우리도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으면 그날부터 주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며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3. 윗음부의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뒤 곧바로 낙원에 가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에는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했으며, 에베소서 4장 9절을 보면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3장 19절에는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했지요.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나름대로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고 해도 모두가 원죄를 타고 난 죄인이며 율법대로 행하지 못하고 자범죄를 범하게 되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나 예수님 이후에도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해서 믿지 못한 사람들은 다 지옥으로 가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주님 이전의 사람들이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을 길을 예비해 놓으셨지요.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 중에도 선한 마음 가운데 창조주를 인정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4~15절에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양심이 있어서 선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해도 양심의 소리를 좇아 살아갑니다. 악에 물들지 않으려고 애쓰며 나름대로 선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자기 욕심을 좇아서 헛된 우상이나 귀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나마 한 분이신 조물주를 인정하며 사람의 도리를 좇아 살아갑니다.
반면에 아무리 선하게 보인다 해도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은 사람은 그 양심이 악하여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밝히 알 수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위를 아시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시기 이전의 사람들 중에서도 만약 복음을 들었다면 믿었을 만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을 구별해 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양심 심판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실 때까지 윗음부에 머물면서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이전의 구약 시대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구원받은 영혼들도 윗음부에 머물고 있었지요.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은 부자는 죽어서 음부의 불 속에서 고통받게 되지만 하나님을 경외했던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지요. 이때 부자가 고통받고 있는 곳은 아랫음부이고 나사로가 안식하는 곳은 윗음부입니다. 아랫음부는 어둠의 영역으로 지옥의 일부이며, 윗음부는 천국과 마찬가지로 빛에 속한 영역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옥의 영들, 곧 윗음부의 영혼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했으니 그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셔야 했던 것이지요. 바로 이때 윗음부에 있던 영혼들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 모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었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인류를 위해 사랑의 간구를 하시고, 믿음을 내보인 강도에게는 천국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사랑을 밝히 깨달아 날마다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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