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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5일 토요일 오후 2:34
 
 

'선' 시리즈 12 - 아브라함의 선(善)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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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 13:8~9) ...
       
 
  
 

'선' 시리즈 3 - 요나단의 선(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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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6일 일요일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사무엘상 19:4~5)


요나단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맏아들로서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위에서 폐하시고 왕으로 세우겠다고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왕위에는 한 사람만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는 다윗과 요나단이 적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상 18장 1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한 것처럼 요나단은 다윗을 원수처럼 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으며 친구를 사랑함이 여인의 사랑보다 승했습니다(삼하 1:26).
이것은 다윗의 선함을 알아볼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요나단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렇다면 요나단의 아름다운 선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1. 사울 왕의 범죄를 묵인하지 않았던 요나단

다윗은 원래 양치는 목동이었으나 이스라엘과 이방 족속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믿음으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쳐 이스라엘에서 유명해졌습니다.
사울 왕은 나라를 구한 다윗을 매우 기뻐해 군대의 장으로 삼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사울 왕과 다윗이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이들을 환영하러 나온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고 노래한 것입니다. 이에 사울 왕은 심히 노하여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날 이후로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울 왕의 시기는 심해져 악신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 주던 다윗을 향해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다윗이 피할 수 있게 해 주셨고 이를 본 사울의 시기와 두려움은 더욱 커져갔지요. 그래서 그 후로도 다윗을 죽이려고 무리하게 그를 전쟁에 내보내고, 그의 집까지 군사를 보내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이처럼 다윗을 애매히 죽이려는 것을 지켜보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의 범죄를 묵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사울이 범죄하지 않도록 다윗을 변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9장 4~5절에 "…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요나단의 선

1) 사심 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
만약 여러분이 요나단과 같은 입장이라면 사울 왕과 다윗 중에 누구 편을 들겠는지요? 인간적으로 보면 사울 왕은 요나단의 아버지요, 한 나라의 왕이니 그의 말을 거역하고 친구 다윗을 옹호하는 것은 육적으로는 불효이자 불충이 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이 이미 하나님의 싫어하신 바 됐고, 다윗이 다음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차기 왕이 될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사심 없이 받아들여 다윗을 도왔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고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 3:30).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자신의 명예와 영광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의 선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되고 하나님 나라가 잘되기를 원한다"라고 하지만 막상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멈칫하거나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일은 주저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일들을 이룸에 있어서 한 부서가 오랫동안 많은 공을 들여 해 놓은 일을 뒤늦게 만들어진 다른 부서가 일의 효율성을 위해 그에 관한 기술과 자료, 인력 등을 요청한다면 그 부서 사람들이 기쁨으로 기꺼이 협조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이것을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수고를 했는데 이것을 쉽게 가져갈까?'라고 생각하며 내어주기를 아까워할까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 도구로서 주의 일을 했다 하지만 사심, 곧 자기 욕심을 구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요나단이나 세례 요한의 마음과 같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설 수만 있다면, 자신은 영예나 칭찬을 얻지 못해도 세상의 소금처럼 아무 형체 없이 녹아질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설령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희생할 수 있는 마음, 다 내어줄 수 있는 마음,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선한 마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선의 마음으로 헌신하고 충성하는 사람은 설령 당장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선을 기억하시고 은총을 내려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범죄를 막고자 온 힘을 다하는 마음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과 더욱이 애매히 다윗을 죽이려는 큰 악을 행치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고자 했습니다. 한 번 말씀드려보고 안될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다고 물러서지 않았지요.
요나단이 거듭 간청하며 다윗을 변호하자 사울은 요나단도 미워하며 심히 노했습니다. 그럼에도 요나단은 살기등등한 아버지께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아버지가 범죄하지 않도록 간청하였지요. 이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어찌하든 더 큰 악을 행치 않도록 자신이 해를 받을지라도 거듭 간청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하지 않도록 옳지 못한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입니다.
역사를 보면, 충신들은 왕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왕이 그릇 행할 때에 목숨을 걸고라도 바른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간신들은 왕이 참으로 잘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일신의 안일을 위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먼저 생각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망의 길로 가는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요? 여러분의 전도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핍박하고 힘들게 한다 해도 변함없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으로 섬기셨는지요? 아니면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포기하거나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한다 하면서 여러분이 지켜야 할 도리는 간과하지 않았는지요?
여러분이 소속된 교회 안에서의 부서나 조직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윗사람이 불법을 행하는 것을 볼 때 어떻게 하시나요? 윗분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내 생각이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좋지 않은 말을 퍼트리거나 허물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마음이 얼마나 선하지 못하고 사랑이 없는 행위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설령 윗분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길로 갈지라도 그 허물을 거듭 말하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으로 하여금 더욱 훼방할 거리를 안겨 줄 뿐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말할 일이 아니다" 하고 물러서서 방관하는 것도 선이 아닙니다. 또한 윗분이니까 말하기 어려워서, 또는 내게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워서 묵인한다면 이 역시 선이 아니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선일까요?
먼저는 진리를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선의 지혜 속에 사랑과 섬김의 마음으로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윗분이나 동료, 형제자매가 범죄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충만하게 달려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면 이는 선으로 인해 그 영혼을 얻은 것이니 하늘에도 상급이 되지요.
야고보서 5장 19~20절에도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들을 권면해서 돌아서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도리를 끝까지 다하는 마음
선한 사람은 누가 악을 행하는 것을 볼 때 차라리 눈을 돌려버리고 싶고 악한 사람 곁에 머물기를 원치 않습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다면 더욱 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요나단은 악한 아버지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녀로서의 도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사울 왕을 버렸고 악인과 함께하는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까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요나단은 결코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아버지 사울 왕과 함께 싸우다가 당당히 죽음을 맞이했지요. 이처럼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 왕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생사를 함께함으로 도리를 다한 것이 바로 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악한 사람과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선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의 악함을 알기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범죄하지 않도록 수차례 간청하는 등 최선을 다해 막았지요. 그러면서도 자녀 된 입장에서 멸망의 길로 가는 아버지를 외면하거나 자녀로서의 도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단은 사울 왕의 아들로서 차기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을 사심 없이 받아들여 다윗을 적극적으로 도왔을 뿐 아니라 아버지 사울 왕이 범죄하지 않도록 끝까지 온 힘을 다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욱 신속히 온전한 선을 이루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과 축복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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