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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5일 토요일 오후 1:09
 
 

'선' 시리즈 12 - 아브라함의 선(善)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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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 13:8~9) ...
       
 
  
 

'선' 시리즈 7 - 나아만의 선(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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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3일 일요일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누가복음 4:27)


나아만은 이스라엘과 인접한 나라, 곧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 나라의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지요. 하지만 그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문둥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왕하 5:1).
아무리 좋은 약과 최고 의술, 자신이 섬기는 신을 의존해 보아도 치료를 받지 못했던 그는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 하나님 권능으로 깨끗이 치료받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무리 큰 권능을 행하는 선지자가 있고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다 해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나아만 장군처럼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마음이 선해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이라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4장 27절에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말씀합니다.
나아만 장군의 행함을 보면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나아만 장군의 선은 무엇일까요?


1. 복되고 선한 소식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

나아만 장군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모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라고 말하지요.
결국 이 말이 나아만 귀에도 들리게 되었고 나아만은 그 계집종의 말을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왕 다음가는 권세를 지닌 지체 높은 신분이지만 하찮은 종의 말도 흘려듣지 않을 만큼 마음이 겸손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말은 선한 소식이며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이처럼 복되고 선한 소식을 들을 때에 전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그것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선하다고 인정하십니다.
만일 나아만의 마음이 강퍅했다면 "네가 무엇을 안다고 참견이냐!" 하며 계집종의 말을 무시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화를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응답해 주십니다"라고 전도할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선의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전도자의 말을 듣고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욱이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어떻게든 세상에 의지해 보려고 하기 때문에 전도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높은 지위에 있었음에도 작은 계집종이 전한 복된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을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선하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2. 복된 소식을 듣고 믿음의 증거를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는 마음

나아만은 계집종이 알려 준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만나기 위해 종들을 시켜 "모셔 오라" 하거나 서신을 띄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선지자를 찾아 나섰지요.
또한 열왕기하 5장 5절 후반절에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치료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이처럼 정성된 마음으로 준비한 것입니다(마 6:21).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나아가는 데 있어서 심지 않고 거두길 바라거나 심은 것 이상을 바라는 요행이 아니라 정녕 응답받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예물을 준비해 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아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십니다.
나아만은 병든 몸을 이끌고 정성껏 예물을 준비해 직접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얼굴도 보이지 않은 채, 다만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문둥병이 나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노하여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하지요. 단지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낫는다고 하니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아만은 믿음으로 나아왔다고 했지만 아직은 자기적인 생각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엘리사 선지자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고, 더욱이 직접 기도해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환을 통해서만 전하니 오히려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나아만이 얼마나 선하고 겸손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는 나아만에게 그 종들이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말하지요(왕하 5:13).
여기서 특이한 점은, 한 나라의 군대장관으로 왕 다음가는 권세를 지닌 나아만에게 종들이 아버지라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화가 나 있는 나아만에게 종들이 아버지라 부르며 권면의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평소 그가 얼마나 선하고 겸비한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종들의 말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들을 줄 알았으며 옳고 좋은 건의라면 받아들이는 넓고 큰마음을 지녔던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종들이 나아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할 수 있었지요.
성도님들은 자녀나 동료, 이웃에게 어떤 건의나 권면의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들으셨는지요?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해?' 하며 불편한 마음을 갖지는 않으셨는지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린다든가 핀잔을 준다든가 외면해 버리지는 않으셨나요? 아니면 혹여 "나도 알고 있다"며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어 버리셨는지요? 그렇다면 어느 누구도 편안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꼭 필요한 말을 할 때도 눈치를 살필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마음이 선하고 겸손했기에 그의 종들이 권면할 때에도 이내 마음을 돌이켜서 순종하는 것을 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었지요. 영적으로 '일곱'은 '완전함'을 뜻하는 완전수이며, 요단강의 '물'은 '하나님 말씀'을 뜻하므로 '일곱 번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아만은 세 번, 네 번 씻어도 낫지 않자 중도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 일곱 번을 씻었고, 그 결과 문둥병을 치료받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되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행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즉시로 문둥병을 고쳐 주신 것입니다(왕하 5:1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신뢰하는 것을,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으로 여기시며 선하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대하 20:20).


3.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갚을 줄 아는 변함없는 중심

누가복음 17장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 사람의 문둥병자를 치료해 주셨는데 단 한 사람만 와서 사례하자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질병을 치료받기 원하거나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고자 할 때 "치료받으면 생명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응답해 주시면 어떻게 하겠습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막상 치료받고 응답받은 후에는 자신이 했던 말을 지키지 않고 마음이 변개해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열왕기하 5장 15절에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했지요.
치료받은 후에 그냥 자신의 나라로 떠나버린 것이 아닙니다. 자신과 함께 온 사람들을 모두 거느리고 다시 엘리사 앞에 나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즉시 하나님만 인정하고 섬기겠다는 다짐을 했지요(왕하 5:17).
이처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한 번 만난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 선한 중심을 지녔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나아만을 택해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이 여러분의 마음에 얼마나 임했느냐에 따라 축복의 크기와 응답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나아만 장군처럼 선한 마음을 갖되 행함으로 온전케 이뤄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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