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뉴스, 만민, 만민교회, 만민뉴스, 이재록, 재록, 닥터리
2022년 6월 25일 토요일 오후 2:18
 
 

'선' 시리즈 12 - 아브라함의 선(善)_1
최신 업데이트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 13:8~9) ...
       
 
  
 

'선' 시리즈 9 - 사도 바울의 선(善)_2


157
2022년 5월 15일 일요일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로마서 9:1~3)


사도 바울은 자기 의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의식도 컸지요. 또 끊임없이 탐구하며 매사에 철저히 대비하는 성품이었습니다. 답을 낼 때까지 집요하게 궁구하며 고민하였고, 이에 따라 자아가 단단하게 형성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호탕한 성격도 있었지만, 계산이 앞서고 생각이 앞섰지요.
그런데 주님을 만나 자신이 옳다고 여겼던 것이 참이 아님을 깨닫자 육의 것은 단번에 버렸습니다. 당대 최고의 율법 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쌓은 지식이라 할지라도 배설물로 여겼지요. 더욱이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더욱 진하게 하나님께 올렸지요. 그러니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놀라운 권능을 베풀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많은 교회를 세우고 세계 선교의 기반을 마련해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지요.
그러면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요,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1.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하되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주님처럼 영혼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오직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우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마저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심으로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셨지요.
그러므로 정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죄로 인해 사망을 향해 가는 영혼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영혼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그는 모진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도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고후 11:28~29).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 뜻을 거스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 3:18) 하며 애통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각처의 교회에 다니면서 어찌하든지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 안에 살도록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요.
로마서 9장 1~3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사도 바울의 육적인 일가친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즉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한 사람들을 가리키지요.
바리새인이었던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도를 증명하러 다니자 이를 심히도 싫어하며 사도 바울을 훼방했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가는 곳이면 그들도 따라가서 훼방하곤 하였지요. 심지어 유대인 중에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행 23:12~13).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이 구원받는 대신 자신이 저주받아야 한다면 차라리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뤘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합니다. 이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지요.
누구보다 지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지옥에 가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승한지를 잘 알 수 있지요. 이처럼 주님의 마음을 닮은 사도 바울이었기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아 권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큰 권능과 깊은 계시를 받았다 해도 모든 영광을 온전히 주님께 돌리는 마음

신약 시대 최고의 권능을 베풀었던 사도 바울은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가 하면 독사에 물려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희한한 능이 나타났지요(행 19:11~12).
사도 바울은 이처럼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높아지지 않았고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겸손히 고백하지요.
이처럼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 삶을 통해 마음의 성결을 이뤘기에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국도 보게 해 주시고, 하늘에서 얻게 될 상급도 알려 주셨지요.
이로써 사도 바울은 영의 것에 대해 사모함이 그 마음에 사무치도록 더해졌으며, 이에 따라 주님께서는 영의 깊은 계시를 통해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에 대해, 또한 천국과 멜기세덱에 대해서도 밝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는 이러한 영의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면 알수록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에 대한 사랑도 더욱 승해졌습니다. 이 깊은 영의 말씀들을 마음에 잘 간직했다가 은혜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들려줌으로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지요.


3. 자신을 들레지 않는 마음

악의 모양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깨달음이 오거나 환상을 보고 비밀스러운 말씀을 들으면 자신을 들레는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은 기도 중에 깨달음이 왔다면 그것을 마음에 담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하려 하지요. 영안이 열려 무엇을 보아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영으로 정진해 들어가려 하고 자신을 들레지 않습니다. 또 깊고 비밀스러운 영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붙들고 어찌하든 자신이 변화되고자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누구에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깊은 계시를 받으며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룬다"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선한 마음의 바탕 위에 오래 참음과 절제의 열매가 맺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도 받지 못할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고, 말할 수 있는 것도 혹여 실족 당할 사람이 있을까 하여 절제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하면서 천국에 이끌려 다녀온 것을 말합니다. 이어지는 5절에는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하지요.
바로 자신이 다녀온 천국에 대해 알려 줌으로 성도들에게 소망을 주고자 하되 자신을 자랑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성령님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습니다. 스스로 영의 것을 터득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자신이 기도해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의 역사로 된 것임을 늘 중심에서 인정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의를 철저히 깨뜨린 후에는 아무리 크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도 중심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권능을 행할수록 자신은 더 낮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더 커졌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한 중심을 가진 사람을 찾아 은사도 주시고 권능도 주셔서 크게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자신은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존재이나 보배,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임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최고의 선을 이뤄 마지막 때 영광의 도구로 귀히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추천 검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