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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8일 일요일 오후 12:4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11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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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4~26)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시리즈 5 -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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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5일 일요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8)


사랑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 결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도 죄인들의 허다한 허물까지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해야 상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며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준다는 말씀의 의미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허물은 그릇된 실수나 잘못을 의미하며, 영적으로는 마음속에 있는 죄의 성질이 행함으로 드러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할 마음이 있다고 해서 이를 허물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도둑질을 했을 때 허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의 죄를 덮어 주는 것보다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일은 더 큰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은 단순히 상대의 단점을 드러내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오래 참음 가운데 그가 어떻게든 잘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며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되지요.
설령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자신에게는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가 될지라도 그것을 덮어 줄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 역시 오래 참음이 기초가 되어서 상대가 온전해질 것을 바라보고 다가오는 모든 고통을 견디며 참아 주는 그런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능히 이같이 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을 믿는 진리의 마음이 있으므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공의 가운데 이루실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맡겨 나가는 것이 참된 선이지요. 그래서 선한 사람들은 상대의 실수나 단점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덮어 줄까, 그가 더 발전할 수 있을까, 변화될 수 있을까?' 하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상대의 흠과 티를 드러내거나 없는 허물을 만들어 전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을 버리고 상대의 허물까지도 덮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2.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을 이루려면

1) 상대의 허물을 보았을 때
가만히 끊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합니다. 구약의 율법대로라면 그녀를 돌로 쳐 죽이도록 내놓을 일이었지요.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가만히 끊고자 합니다. 마리아에게 그런 허물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이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됐음을 요셉에게 천사를 통해 알려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 1:20).
우리는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인지를 깨달아 그렇게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허물이 발견된다면 먼저 당사자를 찾아가 사랑으로 권면해 주는 것이 선입니다.
만일 우리가 한두 번 잘못을 저질렀다 해서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버리겠다." 하신다면 과연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지요? 또한 상대에게 어떤 허물이나 죄가 있다고 해서 용서치 않는다면 화평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형제 사이에는 다투어 허물을 드러냄으로 불의한 자가 되느니 차라리 누명을 쓰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골 3:13~14).
다니엘 6장을 보면, 다니엘이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악을 행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자 굴에 던짐 받습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았기에 얼마든지 악한 자들의 음모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묵묵히 공의의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봉하시므로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나와 이방 나라의 임금과 온 백성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였지요. 오히려 다니엘을 계략으로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은 사자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억울하게 누명을 쓴다 해도 상대를 용서하고 참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사랑과 용서, 인내와 오래 참음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 상대의 허물을 보았을 때
그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하루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자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 준 것이 아니라 다른 두 형제에게 가서 알렸습니다. 이를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장막 안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돌이켜 보지 않았지요(창 9:23). 이처럼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그 허물을 덮어 주었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 않으며, 설령 확연히 드러나는 허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마치 자신의 허물인 것처럼 민망히 여깁니다.
흠과 점과 티도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사람들의 허물을 지적하거나 정죄하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용서를 베풀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으며 영혼들의 아픈 곳을 싸매 주셨습니다. 죄인의 허물을 보면 덮어 주시며 돌이켜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셨지요.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많은 죄와 허물을 용서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사람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허물을 덮어 주라 하니 무조건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옳을까요? 허물은 곧 죄요,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허물 탓에 상대가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체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 허물의 경중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사랑의 권면이나 훈계, 책망 등 알맞은 방법으로 상대를 바른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들보를 다 빼낸 사람만이 남의 티를 지적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해도 사랑을 가지고 권면이나 책망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양약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의 허물을 기꺼이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참사랑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떠난 사람을 그 길에서 돌아서게 한다면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길이고, 또한 그의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라 했으니(약 5:19~20) 이 같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상대가 진리로 변화되도록
사랑으로 이끌어 줘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 주고 이해해 주는 차원을 넘어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심으로 생명을 낳으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썩어질 육의 생명이 아니라 영생으로 인도받을 수 있게 하는 생명이요, 영으로 살리는 생명을 말합니다. 또한 어둠 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찬란한 빛을 비춰 주는 생명이지요.
예를 들어, 허물 많던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기까지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이끄셨습니까?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될 일들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을 때 베드로는 주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도 버리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요 13:37 ; 눅 22:33). 그런데 예수님께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시지요(요 13:38). 결국 예수님께서 잡히신 곳까지 따라갔던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고 말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뛰쳐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눅 22:54~62).
또한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떠올렸지요.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 하리라" 등 자신이 주를 부인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당부의 말씀만 해 주신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베드로는 지난 일들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베드로에게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데 대한 자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더한 죄 가운데로 빠져들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베드로를 구해 내신 것입니다.
이미 지은 죄를 사해 주는 것은 물론, 더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이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의 극치를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으로서 제자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이러한 사랑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대의 허다한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은 강하고 확실하게 상대의 마음을 감동케 하며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함으로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그 사랑을 널리 전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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