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뉴스, 만민, 만민교회, 만민뉴스, 이재록, 재록, 닥터리
2022년 6월 25일 토요일 오후 12:5
 
 

'선' 시리즈 12 - 아브라함의 선(善)_1
최신 업데이트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 13:8~9) ...
       
 
  
 

'선' 시리즈 5 - 다니엘 세 친구의 선(善)


467
2022년 3월 6일 일요일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 3:17~18)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됩니다.
두 나라 모두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심히 노엽게 하므로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을 당하고, 남유다는 세 차례나 바벨론 제국의 침공을 받게 되지요.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1차 침략했을 때 지도층 일부가 포로로 잡혀갔는데 그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 곧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므로 포로라는 신분과 상관없이 이방 족속 가운데 뛰어난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지요(신 28:1). 그러면 다니엘 세 친구의 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

바벨론 왕은 융화정책의 일환으로, 포로로 잡아 온 이스라엘 왕족과 귀족 중에 흠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고 지식을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한 소년들을 데려다가 3년간 그 나라 학문과 방언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도 발탁돼 왕궁에서 왕이 내려주는 음식을 먹어야 했지요.
이것은 포로 된 자로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다니엘에게는 우려되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음식이나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긴 짐승으로 만든 음식이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인 율법의 준행이 중요했기에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식물(食物)을 먹으면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감독관에게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대신 채식만 할 수 있도록 조건부 허락을 받습니다. 일단 10일 동안 채식을 한 후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과 얼굴빛을 비교해 보라는 것이었지요. 과연 그들은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계명을 좇아 자신들을 지키고자 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한 대로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하셨지요.
그 결과 다니엘과 세 친구는 소년들 중에서 왕을 모시는 자들로 뽑히게 되었고 왕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다니엘 1장 20절에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했지요.
만일 여러분이라면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포로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왕의 진미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겠는지요? 포로 신세로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닌 데다 왕이 지정한 음식을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철저히 싫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에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한 선하신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온전히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선하지요.
그런데 어떤 이들은 분명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셨음을 알면서도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판단해 가볍게 여기며 그 뜻을 거스릅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 말씀을 똑같이 준행하는 것 같아도 그 마음이 다른 것도 볼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에 담긴 선하신 뜻을 깨달아 기쁨과 감사함으로 준행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줄은 알지만 마음에 두려움이 있어서 의무감으로 행하기도 하고, 그 뜻을 알지 못한 채 힘들게 지켜가기도 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포로의 신분임에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아 우상의 제물과 가증한 식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으며, 세월이 흐르고 지위가 높아져도 그 마음이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이방 문화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곧 세상적이고 향락적이며 우상 숭배가 만연했지요. 그럼에도 그들은 곧은 중심으로 변함없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는 순결한 자들이었습니다.


2.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의 위협이 와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마음

어느 날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바벨론 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누구든지 절을 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엄포를 놓지요. 그러나 세 친구는 생명의 위협에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때 왕은 노하며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줄 테니 금 신상 앞에 절을 하라고 하지요. 또한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고 회유와 협박으로 세 사람의 의지를 꺾어 보려고 합니다.
이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즉 풀무 불에 던져져서 불에 타 죽는다고해도 우상 앞에 결단코 절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지요.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담대히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왕에게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잃을지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선히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더 높게 살 수 있는 선한 고백이 나옵니다. 바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한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즉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풀무 불 가운데서 건져주시지 않을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참으로 비장한 믿음의 고백이지요.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한 고백이 아닙니다. 능히 건져주실 하나님을 믿으나 그리하지 않으신다 해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을 깊은 선 가운데 고백한 것입니다.
이는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는 온전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다는 사실만으로 족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행할 바를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께서도 이만큼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도리를 다했음에도 오히려 시험이 왔고, 목숨을 잃을 상황이라 해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지요. 이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선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님들은 어떠신지요? 혹여 자신이 잘못하고 범죄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수가 없어서 시험 환난이 왔는데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지는 않았는지요? 열심히 기도하면서 이루고자 한 일들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자꾸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길 원하는데, 나도 축복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 되길 원하는데, 왜 이처럼 형통하지 못할까?' 하며 감사의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는지요? '나도 열심히 심고 충성했는데 왜 내게는 축복이 더딘 것일까?' 하며 서운한 마음을 갖지는 않았습니까? 낙심하고 스스로 절망함으로 기도에 응답받기를 포기하지는 않았는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와 같은 선한 마음이 있다면 서운할 리도, 낙심할 리도, 절망할 리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뜻에 따라 심고 행한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그 자체로 족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으시기에 당장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해서 낙심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가진 사람의 생각 속에서는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얻기 바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아시지요.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든지 아니 주시든지, 또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상황으로 인도하신다 해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결코 변하지 않는 자녀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하다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끝까지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을 안겨 주시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도 오히려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달군 풀무 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켜 주심으로 더 크게 영광 돌리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마음을 주관해서 충분히 세 사람을 건져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풀무 불에 던져지도록 내버려 두셨지요. 세 사람이 변함없는 믿음의 증거를 선 가운데 보일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삼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여 생각지 못한 어려움과 연단이 온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하고 심은 것에 족히 여기며 변함없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의 위협이 와도 절대 타협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추천 검색어